차이코프스키·라흐마니노프 등의 로망스 불러...이안삼 작곡가의 한국 가곡도 선사
▲소프라노 정선화와 바리톤 남완이 19일 서울 압구정로 국제아트홀에서 열린 듀오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
▲소프라노 정선화와 바리톤 남완이 19일 서울 압구정로 국제아트홀에서 열린 듀오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민병무 기자] 파픗파릇 새싹이 올라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소프라노 정선화가 모스크바의 봄을 서울 강남 한복판으로 몰고 왔다. 처음엔 목소리를 낮춰 라흐마니노프의 ‘봄물’ 도입부를 부르자, 러시아 들판에 쌓인 눈이 살짝 녹아 졸졸졸 흐른다. 곧이어 봇물 터지 듯 폭풍고음을 뽐내자 큰 냇물이 되어 콸콸콸 흐른다. "겨울아, 좀 비켜줄래"하며 봄물이 맹렬하게 대시했다. 콘서트장을 꽉 메운 관객 얼굴은 벌써 봄, 봄, 봄, 봄이다.
바리톤 남완도 다이내믹한 봄빛 보이스를 선보였다. 보로딘의 오페라 ‘프린스 이고르’에 나오는 ‘이고르의 아리아’를 드라마틱하게 뽐냈다. 족집게로 콕콕 골라 내듯 탄식, 그리움, 사랑의 감정을 유려하게 표현했다. 쿨쿨 잠자고 있던 봄기운이 기지개를 켜면서 일제히 일어났다.
▲소프라노 정선화가 19일 서울 압구정로 국제아트홀에서 열린 듀오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피아노 반주는 알렉산드로 셀리쩨르가 맡았다. |
▲바리톤 남완이 19일 서울 압구정로 국제아트홀에서 열린 듀오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피아노 반주는 알렉산드로 셀리쩨르가 맡았다. |
정선화와 남완이 1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국제아트홀에서 듀오 콘서트를 열었다. 평소 자주 듣기 어려운 러시아 가곡(로망스)과 우리 귀에 익은 한국 가곡을 반반씩 넣은 무대였다. 두 사람은 1부에서 다채로운 로망스를 불러 러시아 유학파의 힘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정선화는 차이코프스키의 ‘나는 들판의 풀잎이 아니였던가’, 라흐마니노프의 ‘슬프게도 나는 사랑하게 되었네’ ‘꿈’ 등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남완은 차이코프스키의 ‘그리움을 아는 이 만이’ ‘돈주아의 세레나데’를 부른뒤, 말라시킨의 ‘오, 만약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면’을 연주해 브라보 환호를 받았다. 한국의 정서와 닮은 러시아 가곡의 매력에 취한 관객들은 오랜만에 ‘낯선 듯 익숙한’ 노래의 카타르시스를 맛봤다.
▲소프라노 정선화와 바리톤 남완이 19일 서울 압구정로 국제아트홀에서 열린 듀오 콘서트에서 열창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피아노 반주는 알렉산드로 셀리쩨르가 맡았다. |
2부에서는 한국 가곡을 선사했다. 정선화는 늘 자신을 격려하고 조언해 주는 이안삼 작곡가의 작품 2곡을 선택했다. 그는 ‘그대가 꽃이라면(장장식 시)’을 부른 뒤 ‘그대 어디쯤 오고 있을까(김명희 시)’에서는 울컥했다. 요즘 몸이 편찮아 제자들의 음악회에 거의 참석하지 못하는 스승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곧 마음을 다잡은 정선화는 "선생님, 어서 빨리 일어나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아름다운 선율을 마무리했다.
남완은 여심을 저격하는 목소리로 ‘사공의 노래(함호영 시·홍난파 곡)’와 ‘청산에 살리라(김연준 시·곡)’를 멋지게 노래했다. 그리고 정선화와 남완은 듀엣으로 ‘내마음 그 깊은 곳에(김명희 시·이안삼 곡)’를 선물했다.
준비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자 관객들은 짧은 공연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논스톱 박수가 계속되자 정선화가 다시 무대로 나와 "이토록 많은 환호를 보내줘 고맙다. 앙코르 곡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노래를 들려주겠다"라며 남완을 다시 소개하는 재치를 선보였다. 남완은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으로 쓰여 큰 인기를 모은 ‘백합’을 연주했다. 그리고 정선화와 호흡을 맞춰 ‘모스크바의 밤’을 피날레로 불렀다.
이날 피아노 반주는 수원대학교 음악대학 초빙교수인 알렉산드로 셀리쩨르가 맡았다. 그의 섬세한 건반 터치 덕에 로망스가 더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