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스위스의 세계 최대 광산업체 글렌코어가 향후 석탄 생산량을 연간 1억5000만t으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글렌코어는 석탄에 대한 세계의 수요가 탄탄할 것 이란 전망에 그동안 많은 투자를 진행하였지만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의 연이은 압박에 스스로 석탄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특히 로열더치셸, BP, 엑슨모빌 등 세계 최대 에너지관련 기업들이 천연가스에 집중하거나 자사의 온실가스를 감축시키는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행보를 가속화 하고 있어 글렌코어도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결국 동참한 것이란 해석이다.


◇ 핵심사업으로 부상한 글렌코어 석탄사업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룸버그,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스위스계 광산업체인 글렌코어는 내년 석탄 생산량 목표인 1억5000만t을 연간 한계로 설정키로 결정 했다. 또한 글렌코어는 앞으로 회사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 사업활동 등에 대한 정보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렌코어의 지난해 석탄 생산·수출사업에 대한 세전·이자지급전이익(Ebitda)은 52억달러(약 5조 8130억원)로 이는 전체 Ebitda의 25% 가량을 차지한다. 특히 지난해 석탄 1억3000만t을 생산한 글렌코어는 경쟁업체들이 환경오염에 따른 역풍을 우려해 화석연료에서 점차 손을 떼는 와중에도 지난해 리오틴토로부터 호주 석탄광산을 17억달러(약 1조 9006억원)에 사들이는 등 자사의 석탄사업을 꾸준히 강화시켰다.

글렌코어가 이 같은 ‘공격적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최고경영자(CEO) 아이번 글래슨버그가 자사 내 석탄사업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 예찬론자인 글래슨버그 CEO는 1990년 글렌코어의 석탄부문을 책임지면서 석탄부문에서 글렌코어를 세계 최대 업체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등의 석탄광산을 대거 인수했고, 2013년에는 광산업체의 큰 손 엑스트라타를 인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글렌코어는 호주, 남아프리카, 콜롬비아 등에서 총 26개에 달하는 석탄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엑스트라타 인수 후 석탄 가격이 붕괴하면서 글래슨버그 CEO가 희대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견이 투자자들 사이에 제기되었으나 최근 다시 석탄가격이 뛰면서 석탄은 글렌코어 상품 가운데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부문이 됐다.

글래슨버그 CEO는 석탄 호황이 앞으로도 한동안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실적발표를 위한 컨프런스 콜에서 "석탄 시장은 극도의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석탄사업의 전망은 긍정적이다"고 평가한 바 있고, 지난 20일에도 동남아시아 지역 등의 발전용 석탄 수요가 앞으로도 힘찬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낙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탄사용에 대한 우려가 세계 곳곳에서 증대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게 되는 발전원이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마찬가지로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권 국가들은 2040년까지 발전량을 늘리기 위해 석탄사용이 증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석탄산업, 기후변화에 따른 우려로 제동…"석탄사업 규모 축소시켜야"

이렇듯 긍정적인 석탄수요 전망에 힘입어 석탄사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한 글렌코어가 스스로 생산량 한계치를 설정한 배경에는 ‘기후행동 100+ 이니셔티브’(Climate Action 100+ Initiative)에 참여하고 있는 글렌코어 주주들과의 생각이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계 대기업들이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지를 감시한다.

전 세계가 향후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을 막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 12년이라고 유엔(UN)이 전망하자 기후변화 대응에 따르지 않는 업체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압박은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300명 이상의 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해당 이니셔티브에 약 32조달러(약 3경 5776조원) 규모의 자산이 운영되고 있다.

각국이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탄소세 등의 정책으로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 사업이 상당한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이 우려하자 결국 글렌코어도 이들의 압박에 굴복한 셈이다. 글렌코어는 "기후변화에 따른 규제적, 물리적, 사업적 리스크에 끄떡없는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며 향후 구리, 코발트, 바나듐, 아연 등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에 필요한 광산에 집중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시스템(캘퍼스·CALPERS)의 지배구조·전략 부문 책임자 앤 심슨은 "전세계가 저탄소 에너지 형태로 이동함에 따라 업체들은 더 심각한 잠재적 피해를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글렌코어가 보여준 사업방향의 전환은 앞으로 투자자들이 글로벌 대기업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조명해주는 적절한 예시다"고 분석했다. 심슨은 막대한 기금을 바탕으로 전세계 다국적 기업들과 기후변화와 관련한 투자자 논의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심슨은 "캘퍼스는 기업들이 어떤 보호장치도 없는 시장 전환에 따른 혼란을 그저 기다리기보다 석탄 중심 전략에서 이동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의 압박이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각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리스크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도록 하는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각에선 글렌코어가 단순히 석탄 생산량을 제한하는 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네덜란드 지사는 "글렌코어가 진정으로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석탄사업의 규모를 축소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계 금융 싱크탱크인 카본 트래커의 앤드류 그랜트 선임 애널리스트는 "화석연료는 에너지 체계에서 최대한 빠르게 빠져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 사업전략 바꾸는 글렌코어, 에너지 업계의 판도 뒤바꾸나

한편, 글렌코어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우려에 따른 투자자들의 요구사항에 응할 기업은 향후 더 많아질 전망이다. 투자자들은 기업들에게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한 행동에 동참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 위치한 거대 은행들은 석탄 신규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중단키로 했으며 광산업체와 금융기관들도 서서히 석탄사업에 손을 때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광산업체 BHP그룹과 앵글로아메리칸은 "석탄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서서히 감소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글렌코어처럼 생산량 한도를 설정한 석유화학업체들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로열더치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엑슨모빌, 셰브론, 토탈 등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다양한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유럽 최대 석유·가스 업체인 로열더치셸은 투자자들과 업계 최초로 자사 제품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목표설정에 동의했다. 또 셸은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그치지 않고 석유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천연가스에 집중할 계획도 밝혔다.

BP는 자사의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움직임을 약속했고, 셰브론은 메탄가스 배출과 유전에서 발생하는 메탄 연소를 줄이기로 목표를 잡았다. 두 업체 모두 목표가 달성될 경우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주기로 했다. 토탈은 셸과 함께 대체 에너지원 투자에 나서기로 했고, 엑슨모빌은 탄소세 도입을 주장하는 로비단체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메탄가스 배출도 줄이기로 했다. BP, 셸, 토탈 모두 탄소세 도입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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