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정책 ‘엇박자’…공급 늘리겠다며 규제는 ‘고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3.14 08:28

서울 주요 공급 통로인데 잇단 정부 규제 강화로 사업 위축 조짐

▲서울 강남의 한 재개발 아파트 단지 공사 현장 모습.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3기 신도시 발표 등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재개발·재건축 규제는 고삐를 죄고 있어 ‘엇박자’를 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정비사업이 위축될 경우 사업예정지가 몰려 있는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부동산 및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비사업을 추진중인 서울 시내 300여개 사업장이 정부의 규제 강화로 사업이 지연 또는 무산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서울시의 재개발·재건축 클린업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현재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정비사업 조합은 총 114개로 집계됐다.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곳은 72곳, 추진위원회는 141곳 등이다.

서울시가 지난 12일 발표한 아파트 정비사업 혁신·건축 디자인 혁신을 양대 축으로 하는 ‘도시·건축 혁신안’에 따르면 서울 주택 유형의 58%를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단지들 중 56%가 오는 2030년까지 정비 시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반기 시행이 목표인 혁신안은 정비계획 수립 전 ‘사전 공공기획’ 단계를 신설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아파트 단지별로 정비계획 가이드라인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가장 큰 골자다.

현재 재건축·재개발 정비계획은 민간이 자체적으로 수립한 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식인데, 이 순서를 바꿔 서울시가 사업 시작부터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민간에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은 용적률, 높이뿐 아니라 해당 지역 역사·문화, 경관·지형, 가구별 인구 변화 등을 전방위적으로 반영해 단지별 맞춤형 개발 방안이 제시된다.

결국 민간 아파트 정비사업에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에 앞서 국토교통부는 지난 7일 올해 업무 계획 발표를 통해 임대주택 의무비율 상향과 지역조합 가입요건 강화 등 재개발 사업 규제 강화 방안을 내놨다.

먼저 정비사업의 공공성을 높이고 실수요자,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개선에 들어간다는 게 국토부의 취지지만 정비업계로서는 규제 강화로 골머리를 앓게 됐다.

재개발 정비사업자에 대한 자격요건이 강화된 점도 정비업계로서는 부담스럽다.

지금까지는 정비업체가 추진위 설립단계부터 참여해 조합 설립 이후 자연스럽게 추인만으로 재선임이 가능했지만 정부 규제에 따라 정식 절차를 거쳐야만 선정될 수 있게 됐다.

수주 비리가 적발될 경우 입찰 참여에서 영구 배제되는 ‘3진 아웃제’가 도입되면서 시공사들이 수주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도 힘든 상황이다.

정비업계는 서울 일부 재개발·재건축 단지에서 과도한 수주 경쟁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해 사업성이 나빠져 사업 자체가 지연 또는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 지연 또는 무산이 이어질 경우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공급 부족으로 인해 또 다시 출렁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실제로 지난해 재개발·재건축 물량은 1만 7500여가구로 집계됐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많은 약 6만 5000여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올 한해 서울의 전체 공급물량이 약 7만 5000가구로 추정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급물량 대부분이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이뤄진다. 정비사업 위축이 공급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주택 공급 계획 대부분을 재개발·재건축 물량으로 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 강화 일변도로 가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라며 "시장 투명성을 높이는 건 좋지만 일정 수준 이상 공급량을 늘릴 수 있도록 속도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비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 재개발·재건축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불과 몇 년 뒤 공급부족을 불러올 수 있다"며 "한쪽에선 공급확대 정책을 쓰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 강도만 높여서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경제신문 석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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