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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2∼23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서 공연...직접 지휘까지 맡아
노인소외 민감 소재 노래로 표현...시즌2·시즌3처럼 롱런 욕심

작곡,지휘_나실인

창작 오페라 ‘검은 리코더’를 작곡한 나실인. 나 작곡가는 3월 22∼23일 공연에서 직접 지휘까지 한다.


[에너지경제신문=민병무 기자] "노인 소외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유쾌하고 경쾌합니다. 정통 오페라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고 연극적 요소도 많이 넣었어요. 희극적 재미가 가미된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나 할까요. 이런 점이 오히려 관객에게 더 어필할 겁니다."

작곡가 나실인이 오는 22∼23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창작 오페라 ‘검은 리코더(The Black Recorder)’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근 출연자들과 함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서초동 라벨라오페라단에서 그를 만났다. 자신이 작곡한 26곡의 노래로 꾸미는 이번 무대에서 직접 지휘봉까지 잡았다. 오케스트라 연주 파트까지 세밀하게 챙겨 더 큰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각오다.

사실상 ‘검은 리코더’는 모험이다. ‘노인 고독사’ ‘노인 홀대’ ‘버림받은 노인’ 등 음악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민감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과연 이게 통할까’라는 걱정도 들지만, 그는 ‘돈 워리(Don’t Worry)’란다.

"원작의 아이디어가 좋아요. 고독사한 노인들이 저승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는 풍자극입니다. 자식들 눈치 보며 어렵게 살았던 노인들이 죽은 뒤에 ‘누가 더 억울하고 서러운 인생을 살았는지’ 한풀이 하듯 풀어 놓습니다. 대사 하나하나에 피맺힌 애환이 담겨 있어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의 슬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블랙 코미디입니다. "

이승과 저승의 애매한 경계지점에서 떠도는 5명의 노인들 이야기가 공감을 이끌어 내며 ‘공포 스릴러 오페라’ ‘떼좀비 오페라’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나 작곡가는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우리 곁에 흔히 있는 노인들의 스토리에 집중했다. 작곡가 입장에서는 이런 소재를 터치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안해봤으니 도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오페라의 원작은 연극이다. 대본을 쓴 윤미현 작가와는 오랜시간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윤 작가는 노인문제 3부작을 썼는데, 그 중 한 작품인 ‘검은 리코더’를 보고 "바로 이거다"하고 무릎을 쳤다.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이 작품 나한데 달라"며 선점했다. 아무도 손대지 말라고 노터치를 선언한 것이다. 오페라로 완성되기까지는 약 3년이 걸렸다. 윤 작가와 오랫동안 토론하고 고민해 마침내 세상에 나오게 됐다. 

검은리코더

나실인 작곡가가 ‘검은 리코더’ 쇼케이스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제목 ‘검은 리코더’는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상징합니다. 주인공 ‘찬장 할머니’ 유인자(소프라노 박현진·이민정 분)는 30년 전 엄청난 폭풍이 몰아치던 날 그만 찬장에 깔려 죽습니다. 다른 죽은 노인들과 함께 이 찬장으로 만든 나룻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떠돕니다. 유 할머니는 ‘어미는 나무속을 긁어내 구멍을 파낸 리코더처럼, 늘 예쁜 소리 내며 웃고 있어야 하는 거야. 자식들이 손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리코더처럼. 어미는 리코더 같아야 한다니깐. 그렇게하길 바라잖아’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아낌없이 주는 리코더는 곧 부모의 무한사랑을 표현합니다."

모든 등장 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저마다 기구한 사연이 가슴을 울린다. 나 작곡가는 특히 ‘보자기 할머니’ 장을분(메조소프라노 김순희·여정윤 분)에 대해 애정을 드러냈다. 누구보다 당차게 세상을 살았지만 결국 자식에게 버림받은 할머니가 끝까지 자식을 품는 모습은 눈물을 쏟게 한다.

"장을분 할머니는 보자기에 꽁꽁 싸여 산속에 버려집니다. ‘현대판 고려장’의 씁쓸한 모습이 투영되어 있어요. 요즘도 심심찮게 낯선 도시에 버려지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잖아요. 처음에 장 할머니는 가족들과 인도네시아로 놀러 갔다가 그곳에 버려집니다. 아예 집을 못찾아 오도록 낯선 이국땅에 버린겁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전직 높이뛰기 선수에요.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야자수를 따 여비를 마련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의 모습을 본 아들은 깜짝 놀라죠. 황당한 상황이 한바탕 웃음을 유발하지만 곧 마음이 먹먹합니다. 못된 아들은 결국 다시 산속에 할머니를 버리지요."

리코더01

창작 오페라 ‘검은 리코더’ 쇼케이스 모습.


그러면서 나 작곡가는 장 할머니가 부르는 아리아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덧붙였다. 버림받은 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감격을 담은 이 곡은 평범한 일상 속에 귀중한 보물이 숨어있음을 보여준다. 애절한 멜로디와 가사에 저절로 울컥한다.

‘날마다 살아도 모든 게 신기하던데. 엉덩이에 똥 묻히고 골목을 돌아다니는 영철이네 개새끼도 반갑고. 어쩔 때는 그 똥구멍도 참 예뻐. 한여름에 쭈쭈바 하나 빨아 먹어도 달고. 핫도그에 그 케첩 뿌려 먹는 것도 좋고.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마른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 피어 오르는 그 흙먼지도. 벌레 먹은 나뭇잎이 거리에 가득 쌓인 것도 좋고.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에 있는 까만 점도 정겹고. 수요일 마다 동네 어귀에 들어오는 용달차 순대 아저씨도 괜시리 반갑고. 봄이면 하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는 목련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장마철에 후두둑거리는 빗소리에 부침개 해먹는. 늘 분홍신 신고 다니는 영철이 할머니도 좋고. 약국에서 공짜로 주는 영지 오백도 좋고. 대파 한단 살 때마다 백원씩 꼬박꼬박 깎아주는 채소가게 주인도 좋은데. 이토록 다 좋은데. 봄날에 누가 아파트 화단에 튤립 화분을 통째로 내다버린 것을 봐도 좋고.’

나 작곡가는 보자기 할머니가 나룻배를 타고 아들을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 놓지만 아들은 ‘더 멀리 버려 찾아오지 못하게 했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를 외면하는 장면에서는 분노가 치솟는다고 귀띔했다.

다른 주인공의 사연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려운 살림 탓에 자신을 귀찮아하는 아들과 며느리의 눈총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이목련 할머니(소프라노 김은미·정시영 분), 20년 동안 치매를 앓다가 죽은 변소호 할아버지(바리톤 고병준·이용 분), 목에 깁스를 한 목기남 할아버지(바리톤 최병혁·양석진 분)도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또 ‘마스크 쓴 청년’ 남슬기(테너 김중일·김지민 분)는 극중 고독사 노인들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을 하지만, 이들 4명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역할도 담당한다.

"주인공들이야 비중이 있으니 존재감이 드러나지만, 뒤를 받쳐주는 군중들은 그냥 ‘병풍’이잖아요. 그런데 분장을 맡은 선생님이 한사람 한사람 모두를 스토리가 있는 인물로 메이크업 해주었어요. ‘이 사람은 애석하게 교통사고로 죽은 고등학생’ ‘저 사람은 학생운동을 하다 숨진 대학생’ 등 우리 곁에 있을 법한 다양한 인물을 메이크업으로 새로 탄생시켰어요. 사실 이런 부분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나 작곡가는 그러면서 오페라는 협업의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만든 노래는 그저 ‘옹알이’ 같은 거라고 표현했다. 그게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 되려면 연출이 붙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연출을 맡은 안주은 선생이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나 작곡가는 개인적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라 트라비아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전혀 스타일이 딴판인 바그너와 베르디를 동시에 좋아한다는 것은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을 방증한다. 나 작곡가는 이번 작품이 자신의 음악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욕심도 드러냈다.

"이번 작품이 히트해서 시즌1, 시즌2처럼 계속해서 공연되는 게 꿈이에요. ‘오페라의 유령’이나 ‘캐츠’ 등도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땐 허술한 구석이 많았어요. 세월의 힘의 더해져 정교하게 음악이 다듬어지고 생명력을 얻었어요. ‘검은 리코더’도 이렇게 롱런하는 작품으로 키우고 싶어요.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일 겁니다.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웃음)"

이번 공연은 이강호 라벨라오페라단 단장이 예술총감독을 맡았고, 소리얼필하모닉오케스트라·메트오페라합창단·YS어린이공연단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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