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막장 현실에 ‘사이다 엔딩’ 나올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3.18 17:10

평소 드라마를 잘 안보는 편이다. 특히 ‘아침’이나 ‘일일’이 붙은 드라마는 무조건 ‘패쓰’다. 대부분 소위 말하는 ‘막장’이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은 왜 그렇게 많은지,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처음 듣는 ‘병(病)’들이 넘쳐난다. 요새말로 고구마도 그런 고구마가 없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출생의 비밀 따위를 가진 사람은 없다. 물론 돈 많은 재벌급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깜짝 등장하는 이벤트도 보지 못했다. 매주 십여명이 넘게 나오는 ‘로또 1등 당첨자’를 한번도 본적 없는 것처럼 말이다.

막장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씁쓸하지만 매일 매일 전해지는 현실 사회의 뉴스가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기 때문이다.

요즘 ‘버닝썬 클럽’ 사태로 참 시끄럽다. 드라마 작가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더 뼈를 깎는 반성을 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뉴스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영화 ‘베테랑’을 보면 주인공 서도철(황정민 분)이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클럽 지하로 안내받아 들어간 베테랑 형사 서도철은 한 룸안에서 조태오를 처음 만난다. 조태오는 술과 여자, 마약에 취해 VIP룸 안을 온전히 자신만의 광기로 채운다. 조태오는 클럽 안에서 여배우에게 폭행을 가하고 곧 이어 성폭행과 이른바 ‘몰카’까지 촬영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버닝썬 사건과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모른다. 베테랑을 쓴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가지만 빼면 말이다. 현실에서는 서도철 형사가 오히려 조태오의 든든한 ‘뒷배’로 밝혀지고 있어서다.

이쯤에서 버닝썬 사태의 속내를 보자. 매일 매일 쏟아지는 자극적인 뉴스에 멀어버린 눈을 다시 치켜 떠야 한다.

버닝썬 사태의 본질은 새롭게 ‘계급화’ 되어버린 아이돌을 비롯한 연예인들과 그들을 둘러싼 검은 유착이다.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계급이 등장할 때는 항상 그들과 연결된 카르텔이 존재했다. 새로운 계급은 갑자기 생긴 돈과 권력에 도취한다. 이때 이를 노리고 접근하는 ‘똥파리’ 같은 무리는 늘 있어왔다.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까지 이 둘의 ‘공생관계’는 영원할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역사적으로 항상 파국을 맞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한진그룹 일가의 막장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창업 1세대는 정권이나 권력과 유착해 부를 축적했지만 최소한 회사를 일구려는 ‘노력’은 있었다. 창업 1세대인 아버지 세대의 고민과 노력을 보고 자란 재벌 2세는 최소한의 선은 지키려 ‘노력’한다.

문제는 이른바 금수저도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세에서 벌어진다. 태어났더니 그냥 재벌이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없다.

재벌 3세들은 자신들을 특별한 ‘계급’으로 인식하며 자란다. 집안에 일하는 도우미나 운전기사는 본인과는 ‘계급’이 다른 아랫사람일 뿐이다. 신분제도가 존재했던 조선시대의 양반과 노비와 다를 바 없다.

집에 부리는 노비에게 소리지르고 폭행하는 것 쯤이 무슨 문제가 될까. 그러니 조선일보 손녀인 고작 10살짜리 여자애가 할아버지 뻘인 기사에게 "니 엄마, 아빠가 널 교육 잘못 시킨거야"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지 않았을까. 아마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지도 모른다. 매일 하던 일상인데….

그런 의미에서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연예인 계급’의 민낯과 재벌 3세들의 행태는 별반 다를게 없다. 최소(?) 3대를 이어온 계급이냐 한류라는 바람을 타고 갑자기 만들어진 계급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다른 ‘계급’으로 착각할 수 있게 방치한, 돈이 최우선 가치가 돼 버린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일 수도 있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많다. 속칭 ‘킬링 타임’이 필요하거나,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는 ‘신데렐라 신드롬’이거나.

요즘 매일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신흥 계급’의 막장 드라마는 어떻게 봐야 할까.

‘팝콘 각’이기는 하지만 검찰이나 경찰이 권선징악을 통한 ‘사이다 엔딩’을 안겨줄까. 지금까지는 삼류 작가보다 못한 ‘고구마 엔딩’만 보여준 그들에게 또 속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석남식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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