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유치원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3.18 17:00
윤덕균 교수

▲한양대 명예교수 윤덕균

한유총은 2019년 3월 4일부터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등에 반대하며 개학연기 투쟁을 벌였다. 하루 만에 철회했지만 정부는 이를 불법 행위로 간주하며 한유총(한국유치원연합회) 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갔다. 사립유치원 개학연기 투쟁을 주도하며 정부와 맞섰던 한유총 이덕선 이사장이 사임했다. 이 사태는 공권력을 동원한 교육부의 완벽한 승리로 보이나 내면에서는 모두가 패배한 싸움이다. 이 사태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유치원도 명색이 교육기관인데 한유총이 이를 볼모로 삼는 것은 잘못된 처사다.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명분 없는 투쟁이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은 극에 달한 느낌이다. 3월 4일자 조선일보의 [태평로] ‘누가 교육부 좀 없애줘’ 기사에 공감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한유총을 대하는 교육부의 시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유치원 경영자들은 국가를 대신해 어린이 교육을 담당하는, 그래서 표창이나 대우해야 할 대상이지 국가가 관리해야 할 우범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자업자득적인 요소가 있다고 해도 그들을 우범자로 몰고 있다는 인상이다.

정부·한유총 갈등 원인은 ‘교육기관(공공재)’이냐 ‘사유재산’이냐. 사립 유치원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정부는 2012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보육) 도입 이후 매년 조 단위 정부 예산(2019년의 경우 49만여 명의 아이들 몫으로 1조 5638억 원이 지원됨)이 지원되고 있는 만큼 사립 유치원은 교육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종의 공공재로 국가·학부모에게 받은 돈은 교육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사립 유치원을 대표하는 한유총은 유치원 설립 시 설립자의 개인 돈이 들어간 만큼 ‘사유재산’으로서의 성격을 일정 부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의 갈등에서 돈만 보이고 어린이 교육은 실종된 지 오래다. 한유총은 개학연기 투쟁을 통해서 어린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교육부는 개학에 연연해 개학 이후의 어린이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쌍방 모두에게 유치원 하나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지에 대한 유치원의 중요성에 대한 기본 인식이 필요하다.

일본 총리인 아배 신조에게 정신적 지주가 누구인가 하고 물으면 요시다 쇼인이라고 대답하고 정치적 스승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면 이토 히로부미라고 답한다.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라고 하는 현대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야마구치 현의 쇼카손주쿠의 설립자와 1회 졸업생이라는 점이다. 이 유치원은 단층 목조건물로 15평의 작은 교육시설이다. 여기서 요시다 쇼인은 1856년부터 3년간 50여명의 유치원생을 교육했다. 이 학생 중에서 메이지 유신 1대 이토 히로부미와 3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총리대신 2명, 데라우치 마사다케 초대, 하세가와 요세미치 2대 등 2명의 조선 총독, 그리고 무수한 장군이 탄생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야마구치 현에서 총리가 19번 배출됐는데 그 19번째 총리가 아베신조이다.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15번째, 종조부인 사토 에이사쿠는 16번째 야마구치 현 출신 총리다. 쇼카손주쿠는 1922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고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물론 한국의 입장에서는 쇼카손주쿠는 원수를 양성한 유치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 눈을 열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지향하는 메이지유신의 태동지가 15평에 불과한 유치원이었다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두뇌는 5-6세에 이미 결정된다고 한다. 즉 유치원 단계에서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유치원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긍정적 사고에서 교육부도 그리고 한유총도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어린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해답은 명확하다. 유치원이 갖는 공공성과 사유성의 절충에서 문제 해결에 접근해야 한다. 한시적으로 사유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유치원 수입을 유치원 설립 때 은행에서 빌린 돈의 이자나 투자금 회수 등에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유치원의 공공성 측면에서 모든 유치원을 공립화 하는 방안이다. 그 대표적 방안은 ‘매입형’ ‘공영형’ ‘협동조합형’ 등 새로운 형태의 공립형 유치원들이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교육부도 한유총도 "15평에 불과했던 쇼카손주쿠와 같은 유치원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란 유치원의 중요성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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