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라의 눈] "주주님들은 상장사의 ‘왕’이 아닙니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4.15 13:23

금융증권부 나유라 기자


"그렇지 않아도 요즘 주가가 떨어져서 주주들에게 전화를 엄청 많이 받았어요. 욕 하는 분도 있고, 주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냐고, 언제 오르냐고 하소연하는 분도 있고요. 저라고 뭐 별 수 있나요. 사실 제가 저희 회사에 투자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난감할 때가 많죠."

최근 만난 유가증권시장 A 상장사 IR 담당자는 요즘 주가가 계속 떨어지던데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A 상장사는 모 그룹의 지주사였는데, 지난해 실적이 다소 부진한데다 계열사 수익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가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왕 투자하려면 지주사가 아닌 실적이 개선되는 계열사에 투자하려는 심리 때문이었다. 당연히 주식을 팔지 않고 보유하는 투자자들은 속이 탔을 것이다. IR 담당자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욕을 해도 그 마음이 풀어질 리 없다. IR담당자는 기업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이렇듯 상장사 IR 담당자들 중에서는 극성맞은 주주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많다. IR 담당자에게 다짜고짜 전화해서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제 일상이 됐다. 사실 IR 담당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전화를 하는 주주들 가운데 진짜 회사 주가를 뒤흔들만큼 엄청나게 큰 돈을 투자한 이들은 별로 없다. 전화로 폭언하는 주주들 가운데 대부분은 1000만원이 안되는 ‘소액’ 주주들이다. 그래서 IR 담당자들은 지분이 많은 개인투자자들의 번호를 따로 표시해서 그들에게 전화가 오면 나름 신경을 쓰는 방식으로 ‘옥석 가리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극성맞은 주주들은 따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담당자끼리 서로 공유하거나 작전을 짜는 일도 있다.

실력 행사를 하는 주주들은 3월 정기주총 현장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앞세워 회사 경영진들을 타박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식이다. 일부러 주총 현장을 따라다니며 선물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말 열린 B증권사 정기주총도 마찬가지였다. 특정 주주가 ‘의결권 행사’라는 명목 하에 매 안건마다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경영진으로부터 최근 대내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이나 안건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요구했다. 해당 기업 임원은 특정 주주의 답변에 성실하고 신중하게 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 주주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B 증권사 주총에 참석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제 3자가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회사 경영진들에게 목청을 높이거나 이상한 별명을 붙이며 경영진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아무리 주주가치제고가 중요한 시대라지만, 일부 주주들의 ‘도’를 넘어선 행동까지 회사가 다 존중해줘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주총 현장은 주주들의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회사의 경영 내용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단순히 ‘트집잡기식’의 지적만 한다면 주주도 주주로서 존중받을 수 없다. 아무도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투자에 대한 1차 책임은 본인이다. 어느 누구도 투자자의 손실을 메워줄 수도, 그럴 이유도 없다. 주주들이 주주들의 가치를 ‘제고’하고 싶다면 무조건 회사만 압박하기보다 자신들의 요구와 그 근거 등이 타당한지 스스로 점검하고 자제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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