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산 원유 수입금지…정유·석유화학 미묘한 '시각차'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4.23 14:50

"유가 상승세 돌아서면 정유업계 마진 늘어…장기적으론 손해"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입 의존도 높은 석유화학 타격…수익성 악화"
미중 무역분쟁 재점화하면 국내 산업계 '치명타'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조치와 관련해 8개국에 대한 한시적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 등 8개국에 부여했던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이란산 콘덴세이트(초경질유)를 수입해 사용하는 국내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만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의 반응에 온도차가 감지된다.


◇ 정유업계 "충격파 적어"·석유화학 "수익성 악화 걱정"

당장 국내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는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대체할 품종을 찾아야 한다. 초경질유인 콘덴세이트는 주성분이 납사이고, 소량의 등유·경유 유분과 잔사 유분을 함유하고 있다. 특히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다른 중동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납사 함유량이 70% 정도여서 국내 업계가 선호하는 품종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현대오일뱅크, 현대케미칼, SK인천석유화학, SK에너지, 한화토탈 등이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수입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는 이란산 원유를 1억4787만 배럴 수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다음으로 많은 양으로 전체 원유수입의 13.2%를 차지했다. 이란산 원유의 70% 정도는 콘덴세이트로, 콘덴세이트만 비교하면 국내 도입량의 54%를 차지했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에 대비해 수입 다변화 정책을 펴 왔다"면서 "카타르 등 다른 중동산 콘덴세이트 수입량을 늘리거나 러시아, 호주 등에서 수입하면 된다. 또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납사를 수입해 사용하는데 납사 수입량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란산 콘덴세이트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 저렴한 것이다. 또 이란산은 국제유가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이란의 원유 수출길이 막히면 당장 국제유가는 폭등할 것이고, 유가가 상승하면 납사 가격도 상승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 등 8개국에 부여했던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이란산 콘덴세이트(초경질유)를 수입해 사용하는 국내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유업계의 경우 석유화학업계와는 달리 국제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면 원유 구매시기와 제품 판매시기에 발생하는 2∼3개월의 시차로 재고마진이 늘어나고 정제마진 또한 상승하기 때문에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지난해 4분기 정유업계는 국제유가의 급속한 하락과 미국의 정유공장 가동율 증가에 따른 휘발유 재고량 급증으로 정제마진이 폭락하면서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1∼2월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배럴당 45달러까지 폭락했던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가 지난해 12월 말 바닥을 찍고 올해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정제마진 역시 점차 회복세로 돌아서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이 4월 둘째 주 배럴당 4.7달러를 기록했다. 7달러대의 정제마진을 보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떨어진 수치이지만, 지난 1월 넷째 주 배럴당 1.7달러로 바닥을 찍은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정유사 정제마진의 손익분기점(BEP)은 4∼5달러 수준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카타르, 러시아, 호주,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원유를 수입하면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해 왔다"면서 "이란산 콘덴세이트가 가격이 저렴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입을 할 수 없다면 다른 중동산을 구입해 사용하면 된다. 미국산은 불순물이 많기는 하지만 가격이 월등히 저렴하다면 수입해서 다른 중동산 원유와 혼합해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제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면 재고마진과 정제마진 또한 상승해 정유업계의 실적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유가의 폭등은 오히려 정유업계에 타격을 준다. 휘발유 등 제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이라면서 "세계 원유의 20% 가량을 소비하는 미국의 드라이빙 시즌(4∼6월)이 돌아왔고, 미국의 원유 재고량도 줄어 유가 상승 요인이 많다. 여기에 이란 제재까지 더해져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것은 원하는 않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 미중 무역분쟁 재점화는 '최악 시나리오'

▲시진핑 중국 주석과 트럼프 미 대통령.


국내 산업계는 이란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미국의 조치에 거세게 저항하면서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미중 무역분쟁이 다시 불거지지는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2일(현지시간)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 제재를 일관되게 반대한다"면서 "중국과 이란의 협력은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합리적, 합법적인 것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이란산 원유를 계속 사들일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3월 이란산 원유를 하루 평균 61만3000 배럴 사들여 수입국 가운데 최대를 기록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이번 조치 때문에 대량의 원유를 대체하지 않으면 미국 재무부 제재에 직면하는 궁지에 몰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할 방안을 찾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이라면서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런 움직임을 보이면 미국으로서는 중국 금융회사들에 대한 제재를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미국 컬럼비아대의 글로벌에너지정책연구소장인 제이슨 보도프의 말을 인용해 "이란 제재가 미중관계의 큰 난제"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통상·산업정책을 둘러싼 징벌과 보복으로 지난해 무역전쟁을 벌인 미국과 중국은 현재 합의를 앞두고 있지만 이번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 강화 조치로 양국의 무역관계가 다시 악화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기를 해치는 중대 요인이고 미중 주요 수출국인 우리나라 산업계에 악영향을 준다"면서 "국내 경기지수도 안좋은 상황에서 미중 무역분쟁이 다시 불거지면 국내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에너지경제신문 김민준 기자] 

김민준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