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폐렴’이 아니라 ‘고열’이 문제라는 산업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5.15 16:09

이덕환(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한전의 기록적인 영업적자와 손실은 국제 연료 가격이 상승하고, 지난 겨울의 이상 난동으로 전력 수요가 들어든 탓이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산업부와 한전의 공식 입장이다.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을 위협하는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에너지 정책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국민을 기만하는 어처구니없는 말장난이고 무의미한 궤변이다.

한전의 경영 악화가 탈원전과 무관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폐렴으로 사경으로 헤매는 환자에게 정부가 마치 ‘폐렴’은 문제가 아니고, ‘고열’이 문제라고 우기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엉터리 주장이다. 그렇다고 탈원전으로 고집하는 정부가 열을 내려주는 해열제를 처방해줄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전의 상황은 절박하다. 지난 1분기에 6299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1분기의 적자 1276억 원의 5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의 적자다. 당기 순손실도 7612억 원으로 작년 동기의 3배로 늘어났다. 106개 자회사의 실적을 빼면 한전의 손실 규모는 무려 2조 4114억 원에 이른다. 2016년까지만 해도 가장 성공적인 우량 공기업이었던 한전이 한 순간에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탈원전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명백한 진실이다. 올 1분기의 원전 가동률이 75.8%로 지난해 1분기의 54.9%보다 올라갔으니 탈원전이 한전의 실적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산업부의 주장은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할 정도로 의도적이고 명백한 기만이다. 오히려 원전 가동률이 올라갔는데도 한전의 적자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탈원전의 폐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누적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한전은 2017년 탈원전을 시작하면서 한수원에 지급하는 전력 구입 단가를 kWh당 74.7원에서 66원으로 깎아버렸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는 신재생 전력 구입비를 충당하기 위해 자회사의 실적을 의도적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실제로 한전이 구입하는 전력의 25.5%를 공급해준 한수원에게 돌아간 전력 구입비는 전체의 15.3%에 불과했다. 모기업인 한전의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자회사인 한수원의 경영을 악화시켜버린 셈이다. 악덕 기업의 은밀한 내부자 담합이나 분식회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고약한 일이다. 그런데도 한전의 경영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는 뜻이다.

원전 가동률을 평소의 90%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않는 것도 탈원전 때문이라는 사실도 명백하다. 원전의 안전 운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산업부의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 원전은 지난 40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입증해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통령도 그런 사실을 반복적으로 자랑하고 있다. 그런 원전에서 갑자기 가동율을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할 정도의 부실이 연이어 발견될 수는 없는 일이다. 처마에서 빗물이 들이친다고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우고 안전 진단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부와 한전의 난처한 입장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객관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지난 정부에서 어쩔 수 없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정책을 담당했던 관료들에게도 무거운 책임을 물었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밀어붙였던 한수원의 경영진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는 폐렴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항생제 처방이 절실한 형편이다. 무너진 에너지 정책은 어설픈 말장난으로 땜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아무 준비도 없는 ‘탈핵 선언’으로 시작한 비현실적인 탈원전은 서둘러 포기해야 한다. 원전과 재생 에너지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진정한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위험하고 더럽다고 무작정 피하는 것은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합리적인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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