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미중 무역전쟁에도...초점은 "수요보다 공급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5.15 17:41

▲최근 1개월간 국제유가 (WTI) 가격 추이.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미국과 중국이 관세 힘겨루기 국면에 들어서자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원유시장은 이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을 둘러싼 정치·군사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중동지역에서 유조선 4척에 대한 사보타지(의도적 파괴행위)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펌프장 2곳이 공격을 받으면서 원유시장의 펀더멘털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 제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정책,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 감소, 리비아 내전 등 공급을 축소케 하는 요인들이 난무하고 있는 와중에 중동지역에 사고까지 겹치면서 유가의 공급 불안정성이 확대된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원유시장의 투자심리가 ‘수요 둔화’ 측면 보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는 의견이다.


◇ 美·中 무역전쟁으로 인한 수요 둔화 우려에도 유가 '상승'


최근 미국과 이란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며 긴장 수위를 꾸준히 높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한 후 이란을 상대로 외교·경제적 압박을 계속해 왔다. 이란은 이에 맞서 우라늄 고농축에 나설 수 있다고 반발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고하는 등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사우디 유조선 피습 사건으로 중동 지역 내 긴장감이 한층 더 팽팽해지면서 국제유가는 일시적으로 폭등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장중 지난 주말대비 2.70% 폭등한 배럴당 72.53달러까지 상승했고 미국 유가 기준물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마찬가지로 전 거래일 대비 최고 2.58% 급등한 배럴당 63.27달러까지 뛰었다. 다만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된데 따른 충격으로 세계 경제둔화와 석유수요 위축 전망이 나오면서 유가는 상승폭을 반납해 1%대 하락으로 마감하는 급변동을 나타냈다.

▲지난달 30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활동 중인 이란군 (사진=연합)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 12일 사우디 유조선 2척, 노르웨이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유조선 각 1척 등 모두 4척의 유조선이 중동 페르시아만 입구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사보타지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가운데 이 중 한 척은 최대 220만배럴의 원유를 선적할 수 있는 초대형유조선(VLCC)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은 유조선들이 페르시아만을 막 지나가려고 준비하던 순간에 사보타지 공격이 있었다고 전했다.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석유장관은 이 공격으로 "(사우디) 유조선 2척이 심각한 구조적 손상을 입었다"며 "이번 공격은 전 세계 석유 공급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밝혔다. 알팔리 장관은 "다행히 인명 피해나 원유 유출 등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선체는 큰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20% 가량이 이 지역을 통과할 만큼 중요한 지역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하루에 약 1800만 배럴의 원유가 지난 2016년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이동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된 이란 정부는 즉각 부인한 상태며, 또 다른 배후세력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의 해명을 믿지 않는 눈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무슨 짓을 하든 크게 고통받을 것"이라며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 그들이 무슨 짓을 하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이 도발할 경우 군사행동도 불사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 가디언도 "공격받은 유조선 중 하나는 미국으로 수출될 석유를 싣기 위해 사우디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이란은 강하게 부인했지만, 이처럼 수송을 중단하려는 건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마비시키는 데 대한 보복 행위와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유조선 피습사건이 발생한 날 유가가 하락 마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중에 가격이 폭등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트럼프가 지난 10일부터(현지시간) 2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25%로 상향 조정하며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는 모양새 였지만 오히려 유가시장은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감에 장중 상승세를 보인 것 이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의 닉 커닝엄 연구원은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다시 촉발되면서 주요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은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데 원유시장만 상반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며 "지난 13일 장중에 S&P 500 지수는 2% 이상 하락하고 있었지만 그 동시에 브렌트유는 1.5% 상승했다"고 전했다. 스웨덴 투자은행 SEB의 원자재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 비안 쉴드롭도 마찬가지로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10%의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나선 미국의 결정조차 유가를 끌어내리지 못했다"며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성장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원유 스팟가격은 상승기조를 보이고 있었다"고 밝혔다.

원유시장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로 원유 수요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 작은 자극에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재 원유시장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 제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정책,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 감소, 리비아 내전 등 공급을 축소케 하는 요인들이 난무하고 있어 미중 무역전쟁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상승세를 이어왔다.

이에 대해 닉 커닝엄 연구원은 "불과 몇 년전 만해도 이번 사건과(사우디 유조선 피격) 같은 불똥이 시장의 심리를 간신히 움직일 정도로 공급이 충분했다"며 "현재 원유 트레이더들의 심리는 수요 둔화보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 다시 상승기조 탄 국제유가, 공급둔화 요인 해소 힘들어


사우디 유조선 피습 사건이 발생한 이후 중동지역에서 군사적 갈등사태가 추가로 발생하자 이번엔 유가가 상승마감 하였고, 이는 전문가들의 공급부족 우려에 대한 시각을 더욱 뒷받침한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소유의 석유 펌프장 두 곳이 폭발물을 실은 드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공격받은 펌프장들은 사우디의 알-두와디미와 아피프 지역에 각각 위치하고 있으며 파이프라인을 통해 사우디 동부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서부 홍해 도시 얀부까지 수송한다.

알팔리 장관은 이번 공격을 "세계 석유 공급에 대한 테러 행위"라고 비난했다. 알팔리 장관은 사우디 원유 생산과 수출은 중단하지 않을 계획이지만 아람코는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정비를 하기 위해 취유 작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예멘 반군이 공개한 공격용 무인기 가세프-1(사진=연합)


이번 공격의 배후는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예멘의 후티 반군은 석유 펌프장에 대한 드론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후티 반군 대변인인 무함마드 압델살람은 이날 트위터에 "사우디의 필수 시설을 목표로 한 것은 침략자들이 예멘인들에 대한 대량학살과 포위작전을 계속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지난해 7월에도 사우디 수도 리야드 외곽의 아람코 정유시설을 드론으로 공격해 화재를 일으켰다.

이는 곧 유가의 강세로 이어졌다. 지난 14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1.2%(0.74달러) 상승한 61.7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7월물은 1.01달러(1.4%) 상승한 71.24달러를 기록했다. 무역전쟁에 따른 수요둔화 우려에 하락 마감한 전 거래일과 정반대인 모양새다.

무역전쟁을 둘러싼 미중의 관계가 한층 더 악화되면서 유가의 방향성이 정해지지 못 한 가운데,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감이 증폭하자 유가는 결국 상승곡선을 타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원유시장을 둘러싼 공급감축 요인들이 단기간 내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면서 유가의 추가상승이 불가피 하다는 점이다. 우선 OPEC은 내달 정례회의에서 감산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지만 추가적인 감산 연장 결정이 되면 유가는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 셰일오일이 올 하반기부터 생산확산에 나설 예정이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6월 하루평균 원유생산량을 전월보다 8만3000배럴 더 많은 849만배럴로 상향 조정하였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공급확대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메르츠방크는 투자노트를 통해 "미국 원유생산량이 증가해도 OPEC으로 인한 공급감소분을 충분히 메울 가능성은 적어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란과 베네수엘라 제재로 인한 공급 감소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합산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 최고치 대비 무려 185배럴 가량 하락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이란에서의 생산량이 더욱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연말까지 이란산 원유수출량은 4월 수준인 90만배럴에서 40만배럴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바클레이스도 "사우디, UAE를 비롯한 OPEC 회원국들이 이란의 공급 부족량을 메울 것으로 보이지만, 이럴 경우 OPEC의 여유생산능력이 하락하고 중동지역에 군사적 갈등에 대한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대가가 따른다"고 전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대이란제재, 산유국 감산 등 과 같은 원유 공급감소 이슈를 시장이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이 외에 추가적인 공급차질 관련 리스크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원유시장은 원유수요 측면보다 어쩔 수 없이 공급안정성 이슈에 따라 방향성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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