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미중 무역분쟁-중동 불안에도...올해 들어 WTI 26%↑
산유국 적극 감산, '저유가 고수' 美 재고량 늘려...'신경전'
6월 OPEC 회의, 하반기 생산량 결정..새로운 감산안 가능성
회의결과 무관 올해 국제유가 '상고하저' 무게
에너지승자는 '미국' 유력

(사진=연합)


"우리는 미국의 에너지 분야에서 혁명을 일궜다. 미국은 이제 세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 1위 국가 자리에 올랐다." (2019년 2월 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정연설 발언 중 일부)

"우리는 진정하고 있다. 25개국(OPEC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은 (원유 감산에 있어서) 매우 완만하고 절제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보여준 것처럼 우리는 무엇보다 시장 안정성에 관심이 있다."(2019년 3월 로이터통신,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 발언 중 일부)


올해 들어 산유국들의 감산 조치, 베네수엘라 정정불안 등으로 국제유가가 반등한 가운데 하반기부터는 미국의 ‘셰일혁명’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창간 30주년을 맞이해 현재 국제유가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속내와 하반기 전망 등을 집중 조명해 본다.


◇ "40달러 시대는 잊어라"...OPEC 감산에 국제유가 '60달러대로'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사이, 국제유가는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는 글로벌 경기 둔화, 원유 공급 과잉, 미국 증산 우려 등이 맞물리며 지난해 10월 3일 배럴당 76.41달러에서 12월 24일 42.53달러로 44% 급락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당시 WTI는 14일(현지시간) -2.6%, 18일 -7.2%, 20일 -4.7%, 24일 -6.7% 등으로 하루 사이에 무려 2~4% 가량 출렁이며 비트코인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WTI는 1월 2일 46.54달러에서 4월 23일 66.30달러까지 올랐고, 브렌트유 역시 1월 2일 54.91달러에서 4월 24일 74.57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달에는 미국의 원유 재고 증가와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등으로 WTI와 브렌트유가 각각 배럴당 58.63달러, 67.76달러까지 하락했지만, 그래도 작년 4분기와 비교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고 있다. WTI는 올해 들어 26% 올랐고, 브렌트유도 23% 상승했다. 

최근 3개월간 WTI 추이.


이처럼 국제유가가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적인 악재에도 강한 지지선을 형성할 수 있었던 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산유국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실상 주도하는 OPEC과 러시아가 이끄는 OPEC 비(非)회원국은 오는 6월까지 하루 평균 산유량 12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했다. 그러나 감산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작년 12월 6일(현지시간) 정례회의에서 사우디는 10개 비회원 산유국까지 포함한 OPEC+에서 하루 130만 배럴까지 산유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우디는 비회원 산유국인 러시아에 하루 25만~30만 배럴을 줄여달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15만 배럴만 줄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우디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러시아는 일일 산유량 중 20만 배럴을 감축하고, 나머지 9개 국가가 20만 배럴을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사우디는 적극적으로 감산에 나서면서 국제유가가 반등하는데 힘을 보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기구로 에너지 정보를 분석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사우디의 올해 3월 원유 생산량은 하루 980만 배럴로 감산 합의로 설정한 것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이같은 생산량은 작년 11월 사우디가 뽑아 올린 역대 최고치인 하루 1110만 배럴보다 100만 배럴이나 적다. 사우디는 3월 OPEC 전체 감산 물량의 90%를 기여했다.

이처럼 사우디가 고유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것은 ‘비전 2030’으로 명명된 경제 개혁을 추진하는데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전 2030은 사우디가 2030년까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보건·의료, 신재생에너지, 인적자원 개발, 국방 등 비석유분야의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석유 수출의 수익성을 높여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사우디가 올해 국가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가를 최소 8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제재, 리비아 정정불안 심화 등도 국제유가를 떠받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 트럼프, 저유가 고수...사우디 압박하고 이란엔 제재 강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


OPEC의 감산 정책을 이를 바라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위해 거듭 유가가 하락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트위터에서 "OPEC이 원유공급을 늘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 시장은 취약하고 유가는 너무 높아지고 있다"며 산유국들의 감산조치로 유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2월 트위터에서  "유가가 너무 오르고 있다. OPEC은 제발 진정하라"면서 "세계는 유가 급등을 받아들일 수 없다. 취약하다"고 밝히는 등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와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 조치와 관련해 한국, 중국, 인도, 이탈리아, 그리스, 일본, 대만, 터키 등 8개국에 대한 한시적 제재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대이란 제재를 더욱 강화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이란핵 합의 탈퇴 선언 후 이달 초 이란의 외화벌이 원천인 철강, 알루미늄, 구리 등을 대상으로 신규 제재를 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동하는 등 이란의 목을 점점 조이고 있다.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해 이달 2일부터 현재 하루 평균 약 100만 배럴로 추정되는 이란산 원유 수출은 사실상 전면 금지됐다. 이란산 원유 수입 전면 금지 조치가 발효되면 원유를 더는 수출할 수 없게 되고 이란과 원유를 거래하는 국가들도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형태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란산 원유 수출이 급감하면 국제유가가 오르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약속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경제가 위축되지 않기 위해 유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이란 제재 강화를 발표한 직후 트위터에서 "이란원유에 대한 현재 우리의 전면적 제재에서 비롯되는 (원유공급량) 격차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회원국들이 그 이상으로 보충할 것"이라고 밝히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사실상 증산을 압박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겉으로는 미국 측의 의견에 동조했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러시아 RIA통신과 인터뷰에서 "국제적으로 원유 재고량을 들여다볼 것"이라며 "그에 따라 우리의 산유량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는 산유국들간의 합의 때문에 당장 증산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AFP 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우리는 어떤 수준으로 산유량을 유지하기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합의를 했다"면서 "그 합의는 7월까지는 유효하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해 OPEC 내부 파트너 누구도 합의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산유국들은 1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산유량 감시를 위한 장관급 공동위원회(JMMC)를 열고 감산안을 하반기까지 연장하는 것을 선택지로 논의했다. 다만 OPEC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리드 알팔리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은 "6월까지 상황이 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다음달 OPEC+ 정례회의...유가향방은 '사우디' 손에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사. (사진=AFP/연합)


이에 따라 미국의 대이란 제재 이후 당분간 국제유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다음달 중 열리는 OPEC 회의에 달렸다는 평가다. 다음달 25일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본부에서는 OPEC 회의가 열리며 그 이튿날인 26일에는 OPEC 회원국·비회원국(OPEC+) 장관급 회의가 개최된다. 여기서 산유국들은 하반기 생산량을 결정할 예정이다.

현재 원유시장엔 엇갈린 신호가 많아 산유국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향방은 불투명하다. 
알팔리 장관은 최근 공급 불안, 재고 증가 등 엇갈리는 요인들로 원유시장이 "대단히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중동에서 이란의 핵 합의 탈퇴 이후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는 점도 부담이다. 이런 와중에 이란과 중동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EIA의 연도별 글로벌 석유 수급 추정치. OPEC+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공급 확대로 인해 올해 글로벌 석유 수급은 소폭 공급 초과 상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자료=KB증권)


현재 상황에서는 사우디가 증산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만일 사우디가 섣부르게 원유 공급량을 늘렸다가 오히려 재고 증가로 국제유가가 현재와 같은 '숨고르기'를 넘어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지난해 5월 미국이 이란 핵협상을 탈퇴한 이후 원유 공급 감소가 우려되자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은 시장 안정을 위해 원유 공급을 늘렸다. 그러나 당시 미국이 아시아 8개국을 대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에 대해 면제권을 부여하면서 공급 감소는 제한적이었다. 

미국의 원유 공급량이 늘고 있는 점도 6월 OPEC 회의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각 기관들 자료를 종합해보면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계속 늘고 있고, 글로벌 시장에 원유 공급량은 부족하지 않은 상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4월 마지막 주 미국 원유 재고는 990만 배럴 증가하며 전문가들 예상치인 150만 배럴을 크게 상회했다. 미국이 드라이빙 시즌에 들어선 점을 감안해도 재고 증가 폭은 다소 컸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이달 22일(현지시간)에는 미국의 원유재고가 470만 배럴 증가했다는 EIA의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재고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던 전문가들의 전망과는 반대 흐름을 보인 것이다. EIA는 지난 15일 낸 보고서에서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예상 밖으로 증가해 2017년 9월 이후 최대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알팔리 장관이 JMMC를 하루 앞두고 "매주 미국의 자료를 보는데 (미국의) 재고량이 크게 오른 걸 보면 공급이 충분하다는 게 명확하다"라고 밝힌 점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황현수 신영증권 연구원은 "5월 3주차 미국의 원유 재고는 기존 전망보다 더 늘었는데, 통상 계절적으로 5월이 미국의 드라이빙(차량 운전이 많은) 시즌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원유 재고는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원유생산량과 미국 명목 원유수요 추이.(자료=대신증권)


결국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OPEC+는 기존에 비해 규모가 줄어든 새로운 감산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감산을 완전히 종료하면 유가가 하락하고, 반대로 기존 감산량을 유지하면 유가 안정을 바라는 미국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경회 KB증권 연구원은 "다음달 OPEC+ 회의에서는 소폭 완화된 감산안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하반기 국제유가 하락할듯...에너지 게임 승자는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산유국들의 감산 여부를 떠나 올해 국제유가가 상고하저의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하반기로 갈수록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원유 수요는 감소하고 미국의 셰일가스 증산 등으로 공급 과잉이 계속되며 하방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반기 미국 셰일지역 파이프라인 구축으로 셰일가스 증산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미국은 원유순수출국으로 도약해 원유 시장에서 더욱 막강한 지위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하반기 셰일가스를 등에 업은 트럼프 대통령이 ‘에너지 왕좌의 게임’에서 승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월별 석유공급량 추이.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자료=KB증권)


구 연구원은 "국제유가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정세 불안 등으로 3분기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다가 4분기와 내년 1분기에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미국의 생산시설 확대에 따른 부담감이 커지고 연말로 갈수록 생산량이 늘어나는 계절적인 감안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도 이달 초 반기 보고서인 ‘원자재시장전망(Commodity Markets Outlook)’에서 올해 원유 가격의 평균은 올해 배럴당 66달러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측하며 국제유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데 무게를 뒀다. 글로벌 경기 둔화, 미국의 셰일원유 생산량 증가세가 견고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유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에너지경제신문 송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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