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화웨이 제재’ 압박에...韓 반도체·부품업계 ‘속앓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5.26 12:17


[에너지경제신문=이종무 기자]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중국 화웨이 제재’가 확산되면서 우리나라 관련 업계의 속앓이도 깊어지고 있다. 국내 기업의 반도체, 카메라 모듈 등 스마트폰 주요 부품을 사들이는 ‘큰 손’인 화웨이가 생산을 줄이면 그만큼 동반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특히 미국이 최근 우리 정부에도 ‘반 화웨이 전선’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국내 기업들이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화웨이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전자기기 제조업체로 한국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국내 기업과 경쟁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주요 부품을 조달 받는 협력 관계에 있기도 하다. 이는 화웨이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기업은 화웨이의 발주량이 줄어들 경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 국내 반도체·전자 부품업체까지 속앓이
국내 기업 가운데 화웨이를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는 곳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꼽힌다. 이들은 화웨이 스마트폰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대표 업체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벌어들인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에서 벌어들인 매출만 40%에 육박(39%)한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일부 우려의 시각을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최근 국내 반도체 업계는 메모리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급락으로 실적 하락에 이어 ‘국내 경제 위기론’까지 불러일으킨 바 있다. 화웨이 제재를 위시한 중국향 제재나 거래 중단이 장기화·현실화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부품을 공급하는 또 다른 부품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LG이노텍의 경우 화웨이를 비롯해 오포와 비보 등 다른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향 매출 비중이 10∼15%를 차지한다. 화웨이 매출 의존도가 크지는 않지만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LG이노텍 측은 "화웨이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고 있지만 매출 의존이 거의 없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기는 화웨이에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부품을 일부 공급하고 있다. ‘전자 산업의 쌀’로 불리는 MLCC는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 전자기기 핵심 부품으로, 
전류·신호를 전달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 현상을 막는 역할을 한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제재를 일단 90일 유예한 만큼 즉각 피해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내부적으로 고민과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화웨이 제재와 관련, 영국, 대만의 일부 기업과 일본 주요 기업은 이미 화웨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들 정부로서는 미국에 확실하게 "우리는 미국 편"이라는 강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기업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을 모두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제2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부는 사기업 활동에 정부가 개입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논리이고, 국내 기업들은 일개 기업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화웨이 측은 일본과 대만 기업이 자사와 거래를 중단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화웨이는 
지난 24일 참고 자료를 통해 "일본과 대만의 일부 기업이 화웨이에 대한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들 기업은 우리와 거래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 ‘CES 아시아’에도 불똥
미국의 전방위적인 ‘화웨이 조이기’는 아시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박람회인 ‘CES 아시아(CESA) 2019’까지 불똥이 튀는 모습이다. CES 아시아는 아시아 기업들의 최신 기술과 함께 미래 기술까지 엿볼 수 있어 연평균 5만여 명이 찾는 세계적인 행사다. 올해는 내달 11∼13일까지 3일간 중국 상하이에서 막을 올린다. 이 행사에서 스마트 카, 증강·가상현실(AR·VR), 인공지능(AI) 등 최신 기술 경향이 소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면서 기업들의 참가 열기가 식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행사에서 전시 부스를 운영하기로 한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주최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당초 이번 행사에서 5G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기기,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기반으로 한 TV 등 가전제품을 통해 스마트 홈, 홈 엔터테인먼트 기술력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부스 철회 배경이 앞서 일부 매체에서 보도된 미·중 무역 분쟁 때문은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부스는 운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도 CES 아시아에서 부스를 설치하지는 않았다"면서 "이번 결정이 급박하게 이뤄진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스 철회가 이번 행사 불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행사장 인근에 광고를 설치하고 여러 부대 행사 등이 예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LG전자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행사에 부스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LG전자는 다만 상하이 케리 호텔에 기업 간 거래(B2B) 부스를 운영해 자사 프리미엄 브랜드 ‘시그니처’를 중심으로 스마트 홈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처럼 아시아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전시 부스를 설치하지 않으면서 이미 CES 아시아 분위기는 ‘반쪽’ 행사로 기울고 있는 모습이다. 박람회를 주최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측은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잘라 말했지만, 올 초 미국 CES에서 ‘혁신상’을 대거 수상한 우리 기업을 대신할 제품이 많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행사 개막일인 내달 11일 리처드 위 화웨이 소비자 부문 최고경영자(CEO)의 기조 연설이 예정돼 있다. 미국 제재에 대한 입장을 밝힐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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