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부회장,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카드 언제 꺼내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6.18 15:26

실적악화서 점차 벗어나 정상 궤도 올라...곧 윤곽 드러날 듯
업계선 현대모비스 지분 매집 방식 구조개편 확률 높게 점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투자자들과 현대차그룹 등 모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여러 옵션들을 검토 중입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지난달 한 공식 석상에서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질문의 답변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언제 시작할지에 재계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판매 부진과 실적 악화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현대차그룹이 빠르게 정상 궤도에 오른 만큼 조만간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내부적으로 리더십을 확실히 다진 정 수석부회장이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현대차·현대모비스 등의 대표이사 자리까지 꿰차며 그룹 2인자 자리를 공고히 했다. 다만 아직까지 지분 승계는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핵심 3사 중 정 수석부회장이 지닌 지분은 현대차 2.35%, 기아차 1.74% 정도 뿐이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공개했다 철회한 지배구조 개편안에도 이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다는 분석이다. 당시 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한 후 이 회사를 ‘지배회사’로 두는 안을 추진했었다. 이럴 경우 현대글로비스 지분율(23.29%)이 높은 정 수석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회사 지분을 일정 수준 확보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의 실적이 지난해 바닥을 찍고 ‘V자 반등’을 시작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 등은 국내와 북미 시장 등에서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원화 약세 등에 힘입어 수익성도 개선되는 추세다. 지배구조 개편 같은 ‘큰 그림’을 생각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외부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 잠정중단을 결정한 지 1년이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부담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지니고 있다.


시장은 이미 기대감을 반영한 모습이다. 연초 이후 현대차그룹 내 주요 상장사 주가는 20% 안팎 올랐다. 신차 판매 호조와 실적 개선 등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그룹 시너지효과를 기대한 영향도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주요 기업들이 투자자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의견에 힘을 보탠다.

업계에서는 정 수석부회장과 총수 일가가 어떤 형태로건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집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개편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그룹을 지배하되 제약이 많은 지주사 방식은 선택하지 않는다는 예상이다. 한 회사가 지주사가 되거나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가 각각 분할 뒤 지주사를 세울 경우 대규모 인수합병(M&A) 작업과 금융계열사(현대캐피탈, 현대차증권 등) 운영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현대오토에버 등이 엮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글로비스는 물류, 현대오토에버는 전산시스템 설계·관리를 주 업무로 한다. 현대모비스 내에도 IT사업부문이 있고, 미래 전략 등 큰 그림을 짤 회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들 회사의 합병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정 수석부회장 입장에서는 합병 이후 현대모비스 지분을 일정 수준 취득한 뒤, 다른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해 지분을 더 끌어모으는 선택이 가능하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오토에버 주식도 9.57% 들고 있다.

지난번 실패한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을 재추진하되 합병 비율을 조정하는 식이다. 다만 지난해에도 양사간 합병 의도에 의문을 품은 목소리가 컸던 만큼 세심한 조율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비상장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실탄’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 회사 역시 정 수석부회장 지분율(11.72%)이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증시에 직접 상장 또는 현대건설과 합병 등을 통해 우회상장하는 방안 등이 수년 전부터 거론돼왔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은 지난번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할 당시에도 양도세를 최대 2조 원까지 내야하는 ‘정공법’을 택했었는데, (지배구조 개편) 경우의 수는 많지만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는 방증"이라며 "새롭게 내놓는 개편안 역시 시장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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