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병 든 풀뿌리 민주주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6.19 09:36

백영철 이슈게이트 발행인 겸 정치 평론가


고액강연료 논란에 휩싸인 김제동씨가 현 정권에서 잘 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입담이 뛰어난데다 진보주의자이고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던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절친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대전 대덕구에서 촉발된 고액강연료 파문은 논산시, 아산시, 예천군, 김포시, 서울 동작구 등지로 이어지고 있다. 액수는 90분에 1500만~1620만원 사이다. 김제동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KBS를 향해서도 눈을 흘긴다.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이 그를 뉴스의 메인앵커로 앉히고 일주일에 1400만원(일주일 4회 출연, 매회 출연료 350만원)을 지불하는 것을 보고 수신료를 못 내겠다며 분개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 김제동 사건도 마찬가지다. 물 들어올 적에 노 젓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본주의 체재에서 김제동씨가 좌파 리무진 행세를 하며 강연의 몸값을 올린다고 해서 그를 탓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분개하고 따져야할 대상은 관련된 기초자치단체장의 독단과 예산 남용에 대한 무개념이다. 이번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도 환경운동가 출신인 구청장이 이끄는 대덕구 예산자립도가 겨우 16%에 불과한데도 예산을 펑펑 쓰려는 행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행정경험도 주민들에 대한 책임감도 비전도 없는 기초단체장들이 줄서기를 잘하거나 운 좋게 묻지마 투표 열차를 타고 온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이런 비정상의 기초단체들이 예산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 써대는 비정상의 일상화가 지방자치단체에 만연돼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의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다.

경기 과천시는 현재 인구 5만8000명의 작은 도시다. 과천정부청사가 있는 행정도시이지만 주요 부처가 다 세종시로 빠져나가고 방통위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말이면 경마장과 서울어린이 대공원을 찾는 사람이 인산인해여서 꽉 막힌 교통으로 몸살을 앓는다. 오래전부터 그린벨트가 90%가 되는 지역이어서 그게 장점이었지만 이마저 서울과 인접하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격변 속의 작은 도시를 문화생활과 편리함과 인간미와 여유가 넘쳐나는 쾌적하고 건강한 도시를 만들려면 기초단체장의 비전과 리더십이 남달라야 한다. 시청의 조직문화를 혁신하고 지역 정치문화를 고양하고 복잡한 도시 곳곳을 현대화하려면 시민들의 전폭적인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설득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당선된 뒤 얼마 안 돼 자신의 아파트 전세금 6억5000만원을 빼내고 바로 옆 동의 관사로 이주했다. 45평형대 아파트인 이 관사는 지방도시에서 출퇴근하는 부시장이 사용하던 곳이다. 시장이 그 자리에 들어가면서 부시장은 따로 기사가 딸린 차량으로 하루 몇 시간씩 걸려 출퇴근을 해야 하고 추가 예산도 이래저래 많이 든다. 시장이 시민들을 결속시키려면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도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던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부당한 시 행정에 침묵하며 방관하는 사이 시청의 독단과 오만은 커지고 있다. 과천시가 최근 41명의 공무원 증원안을 시의회에 요청한 게 그 일례다.

이 같은 독주와 반발, 갈등은 과천시청이 제출한 전년도 결산심사안이 의회에서 전격 부결 처리되는 이례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시장과 의회의 대립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자체장들의 주요 덕목은 선공후사 정신이다. 청렴은 어렵더라도 예산을 쌈짓돈처럼 흥청망청 쓰지는 말자. 자기 돈은 통장에 넣고 주민이 낸 혈세를 함부로 쓰는 순간 그 지자체장의 신리는 바닥에 떨어진다. 자기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제편’인 개그맨에 고액강연료를 쥐어주고, 주민 혈세로 공무원 조직 확대와 승진 파티를 벌이겠다는 지자체장들의 무개념은 오십 보 백 보다. 주민을 위한 풀뿌리민주주의는 어디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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