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SM엔터에 빨대 꽂은 이수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6.19 16:02

민병무 금융증권 에디터

▲민병무 금융증권 에디터


‘모든 것 끝난 뒤’ ‘한송이 꿈’ ‘파도’ ‘행복’은 지금 들어도 꽤 괜찮다. 모두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소싯적에 불러 히트한 노래다. 서울대 출신 포크송 싱어로 1970년대 초반 연예계에 데뷔했다. 가수로 활동했지만, 오히려 TV 진행자와 라디오 DJ로 이름을 더 날렸다. 초창기 MBC대학가요제의 사회를 도맡아 재치있는 입담을 뽐냈고, ‘젊음의 음악캠프 이수만과 함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청취자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198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딴따라 세계’에서 제법 탄탄한 기반을 다지고 있었지만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1985년 UCLA(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 시절 그를 사로잡은 것은 철저하게 분업화·전문화 된 미국의 음반산업 시스템이다. 큰 물서 배우고 국내로 돌아와 자신의 음반을 만들었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후배 양성으로 방향을 튼다.

1989년 2억원을 투자해 SM기획을 설립했다. 종잣돈은 인천 월미도에서 카페를 운영해 마련했다고 한다. 첫 작품은 ‘현진영과 와와’였지만 마약 사건이 터지면서 곤란을 겪었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승부수를 던진다. 역량 있는 10대 인재를 뽑아 춤과 노래를 연습시켰다. 스타 지망생을 발굴하면 바로 데뷔 시키는 관행에서 벗어나 수년 동안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세상에 내놓은 방식으로 전략을 바꾼다.

1995년 SM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1996년 말에 ‘High-Five of Teenagers(10대들의 승리)’란 뜻의 HOT를 탄생시킨다. 멤버 5명을 뽑는데 1년을 보냈고, 선발한 뒤 6개월 동안 합숙하며 담금질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2000년 SM엔터테인먼트를 코스닥에 상장하며 국내에 본격적인 연예 기획사 시대를 열었다. SES, 신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보아, 동방신기, 천상지희,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 레드벨벳 등 대어를 잇따라 키워냈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얻으며 한류 성공신화를 썼다.

최근 잘 나가던 시가총액 1조원짜리 ‘이수만의 SM’이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됐다. SM 지분 7.79%를 보유한 3대 주주 KB자산운용이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주주 서한을 보내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선 것. SM은 최대주주인 이수만 회장(19.08%)과 특수관계인 등이 지분 19.49%를 보유하고 있고, 2대 주주는 국민연금(8.18%)이다. KB자산운용은 "내부 거래로 기업가치가 훼손됐다"며 이수만 회장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의 합병과 배당 등을 요청했다. 만약 요구조건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새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혹의 정점은 이수만 회장의 100%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이다. 음악자문 및 프로듀싱 업무를 담당하며 SM에서 연간 100억원 이상을 받아갔다. 다른 경쟁사인 YG나 JYP에는 없는 독특한 구조다. 2014년 75억원, 2015년 99억원, 2016년 110억원, 2017년 108억원, 2018년 145억원으로 해마다 액수가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SM 매출액의 6%, 영업이익의 44%를 챙겨갔다. 엄청난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들였다. SM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년 번 돈의 거의 절반을 그냥 빼앗기는 셈이니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갖는 건 당연하다. 방법만 다를 뿐인지 태광그룹 총수 일가가 계열사에 김치와 와인 등을 억지로 팔아 33억원을 ‘인 마이 포켓’한 것과 똑같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것을 / 못본척 눈감으며 외면하고 / 지나간 날들을 가난이라 여기며 / 행복을 그리며 오늘도 보낸다 / 비 적신 꽃잎에 깨끗한 기억마저 / 휘파람 불며 하늘로 날리며 / 행복은 멀리 파도를 넘는다" 이수만이 직접 작사·작곡한 그의 대표곡 ‘행복’이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SM의 가치가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K팝의 선두 회사가 절묘한 수법으로 대주주에게 돈을 몰아주었다고 생각하니 참담하다. 모두가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것은 결국 이수만 회장의 결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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