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의 눈] 이 땅에 믿고 살 집 어디 없습니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6.24 17:38

건설부동산부 오세영 기자


6억. 서울 강서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 84㎡ 주택형이 5년 동안 불려진 평균 몸값이다. 지난 2014년 4억원대 선에서 분양을 시작한 이 단지의 현재 매매가는 10억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어마무시하게 집값이 오른 만큼 거주지로서의 역할은 잘 해내고 있을까. 5년 동안 평균 6억원의 웃돈이 붙은 이 단지는 입주 초기부터 누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스프링클러 배관 등 여러 배관에서 부식이 발생해서다. 5년 동안 내부는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 집값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폭 상승 중이다.

아파트는 현대 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형태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말 우리나라 전체 주거형태의 48.6%를 아파트가 차지한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의 아파트 비율은 더 높다. 세종시에서는 아파트가 전체 주거형태의 65%를 차지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데 ‘아파트의 고통’은 몇 십 년째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 2013년 인천 청라는 57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한 대형 건설사가 시공을 맡은 만큼 당시 ‘최고 높이 최고 입지’를 자랑했다. 그런데 준공 사흘 전 내부자의 양심고백으로 도면보다 내진용 철근이 적게 시공된 사실이 드러났다. 내부자의 양심고백이 없었다면 누구도 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30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 1991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 아파트의 경우에도 부실 공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멘트에 바다모래를 섞어서 사용할 때 탈염(염분기 제거하는 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소금 아파트’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여기에 불량 철근, 중국산 저질 시멘트까지 그야말로 ‘대환장 콜라보’가 아닐 수 없다.

10년. 우리나라 ‘노후 주택’의 기준이다. 입주한 지 10년만 지나도 노후주택으로 취급받는다. 재개발·재건축만 기다리는 건설사들은 ‘어디를 허물고 새로 지을까’ 혈안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몇 백 년이 지난 건물에서도 사람들이 생활한다. 불편한 부분만 수리를 거칠 뿐 굳이 허물고 다시 세우는 식의 재건축을 반복하지 않는다. 도시의 역사를 품은 건물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6억원의 웃돈이 붙었다는 단지를 취재하다가 만나게 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멀쩡한 자재만 들여와도 몇 십 년은 그냥 쓸 수 있다"고 말한다. 30년 사용할 수 있는 멀쩡한 파이프, 100년 동안 강화된다는 콘크리트 등만 보아도 지어진 지 10년 밖에 되지 않은 아파트를 ‘노후 주택’으로 전락시킬 이유가 없다.

이쯤 되니 사람을 살게 하려고 집을 짓는 것인지, 사게 하려고 집을 짓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재건축을 강행할 수밖에 없게끔 10년, 20년이 지나면 주택이 낡아보도록 하는 마법의 시공법이라도 있는 건가 싶다.

누군가 나에게 6억원의 웃돈이 붙은 저 집을 구매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NO’다. 5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배관이 부식되는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실체를 알고도 구매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연 적당히 살다가 다른 이에게 집을 팔 때 "누수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있을까. 주거지 구성원인 ‘우리’ 그리고 우리를 담는 ‘아파트’ 모두 겉만 멀쩡하고 속은 병들어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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