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라의 눈] 우군 확보한 조원태 회장, 45%의 한진칼 주주들 잊지 말아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6.25 14:11

금융증권부 나유라 기자


"어제도 오늘도 졌습니다. 손실이 너무 커서 괴롭습니다. 술 취해서 푹 자고 싶습니다."


최근 한진칼 소액주주가 포털사이트 종목토론실에 올린 글이다. 한진칼 주가가 이틀 새 25%가량 급락하면서 소액주주들은 밤에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내일은 오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새벽에도 계산기를 두들기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주가는 KCGI(강성부펀드)의 지분 매입으로 인한 경영권 분쟁 기대감, 아시아나항공 매각 이슈 등으로 인한 1등 국적항공사의 가치 부각 등으로 연초 이후 최대 40%까지 급등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증권가에서는 한진칼 주가가 과열 국면에 진입했다고 분석하면서도 주가가 어디까지 오르고 언제쯤 하락할지에 대해서는 가늠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랬던 한진칼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미국 최대 항공사 중 하나로 꼽히는 델타항공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델타항공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항공 대주주인 한진칼 지분 4.30%를 확보했고,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은 뒤 한진칼 지분을 1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간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이 사업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해온 만큼 공식적으로 조원태 회장의 편에 서서 경영권 분쟁을 잠재우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현재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17.84%)을 비롯한 한진그룹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한진칼 지분 28.94%를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 델타항공 4%가 가세하면 전체 발행 주식 수의 3분의 1 이상이 조 회장 측에 쏠리게 된다. KCGI는 현재 지분율이 15.98%에 불과해 조 회장과의 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것이 증권가의 중론이다.

물론 앞으로 강 대표가 어떠한 전략을 구사할지 모르는데다 이달 27일에도 유한회사 ‘캘거리홀딩스’ 설립 등기를 완료하며 한진칼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경영권 분쟁 역시 ‘끝났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이에 증권가 애널리스트도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사실상 종식’이라고 표현하며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데 무게를 실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간 한진칼의 주주가치제고를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이다. 한진칼 소액주주 비중은 작년 말 기준 무려 45.09%(2692만4877주)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조 회장이 델타항공이라는 우군을 확보하면서 기업가치 개선이나 주주가치 제고 등을 다소 더딘 속도로 진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진칼은 올해 2월 ‘한진그룹 비전 2023’을 통해 지속적인 배당으로 주주 중시 정책을 실천하고, 주요 상장사와 함께 그룹 투자설명회(IR)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연내 매각하고 제주 파라다이스호텔도 연내 사업성 재검토를 통해 매각을 추진하는 등 사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이 델타항공이라는 우군을 확보했고, 경영권 분쟁에서도 승기를 잡으면서 당초 공언한 약속들을 지켜야할 당위성도 사라진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조 회장은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항공이 국적항공사 1등 자리에 올라설 수 있던 것은 항공사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성원과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45%의 소액주주들 중에서는 한진그룹의 가치와 향후 가능성 등을 높이 평가하며 주가 등락과 관계없이 꾸준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주들도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회사·자회사와 관련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사는 이사직을 즉시 상실한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제안했는데, 이 안건이 부결됐던 것은 오너일가 외에 7%의 소액주주들이 조 회장 일가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주주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간 한진칼이 공언했던 내용들을 잘 이행하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편법’이 아닌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다. 최근 한진칼 주가 급락으로 어느 때보다 무더운 날씨를 보내고 있는 주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들을 해야하는지 한진그룹은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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