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핵합의' 갈등, 韓 불똥튀나...호르무즈 해협에 쏠린 눈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7.13 10:02

미, 한국-일본 등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

정부 "지역정세 논의 차원에서 호르무즈 의견 교환"

미, 이란과의 갈등 지속시 주변국에 공조 압박 계속될듯

▲(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중국은 석유의 91%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얻고, 일본은 62%, 많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왜 다른 나라들의 선로를 보상 없이 오랫동안 보호하고 있는가. 이들 모든 국가는 항상 위험한 여정이었던 곳에서 자국 선박을 보호해야 한다." (2019년 6월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미국과 이란이 핵 합의 등을 둘러싸고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면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가운데 양국 간 갈등이 한국, 일본 등 다른 나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민간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 연합체 구성을 동맹국에게 요청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우리나라 역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

아직까지 미국이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 측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은 하지 않았지만, 해당 안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숙원이었던 만큼 파병을 요청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측 카운터파트인 찰스 쿠퍼먼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과 1시간 정도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이 있었는지 질문을 받자 "그런 얘기는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떤 계획과 전략을 갖고 있는지 제가 먼저 물어본 것"이라면서 어떤 답변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밝힐 수 없다"고 일축했다.

김 차장 측은 '호르무즈는 지역정세 논의 차원에서 일반적 의견 교환이었고 미측 답도 일반적이었다. 파병논의도 전무했다'는 내용을 거듭 강조했다.

또 김 차장은 "미중관계,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어나는 일들, 한일 간의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고 (쿠퍼먼 부보좌관이) 이해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호르무즈 해협에 연합체를 결성하는 안을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 9일(현지시간)부터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 9일 동맹국 군 등과 연합체를 결성하려 한다며 "수주 이내에 어떤 국가가 이러한 구상을 지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 CBS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 한국, 일본을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이 계속 열려있도록 하는 노력과 관련한 공조를 강조한 바 있다.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민간 선박들이 공격받는 일이 벌어지자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에 '파병'을 요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양국 갈등에 '호르무즈 해협'이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는 걸까.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협이다. 이 해협은 세계적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의 중요한 석유 운송로로 세계 원유 공급량의 30% 정도가 이곳을 통과한다. 특히 중동 지역의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 입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에 군사적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가장 크게 타격을 입게 된다. 이곳을 통해 수송되는 원유와 천연가스 80% 이상이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주요 아시아 지역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의 중동에 대한 원유 의존도는 지난해 88%에 달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일본 회원사 선박은 연간 총 1700여척이다. 이 중 500여청이 유조선이다.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지난해 73.5%로, 원유 수입의 대부분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이뤄진 이란 핵합의를 최악의 합의라고 비판하면서 지난해 5월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8, 11월 두 차례에 걸쳐 대이란 경제·금융 제재를 복원했다. 

여기에 미국은 지난달 13일(현지시간) 걸프 해역으로 이어지는 오만 해상에서 노르웨이 선박을 포함한 유조선 2척이 어뢰 공격을 받은 것을 두고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양국 간 갈등은 군사 전선까지 확대됐다. 이란이 서방을 압박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려 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란이 최근 영국에게 유조선을 억류당했다는 이유로 영국 유조선을 나포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이란은 더욱 고립됐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의 무장 쾌속정 5척은 페르시아만을 지나 호르무즈 해협에 들어선 영국 유조선 '브리티시 헤리티지'호에 접근했고, 유조선에 항로를 바꿔 인근 이란 영해에 정박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유조선 뒤에서 호위하던 영국 해군의 소형구축함 '몬트로즈'(Montrose) 함이 이란 선박을 향해 경고하자 이란 쾌속정은 물러났다.

영국 해군이 자국 유조선 보호를 위해 파견한 몬트로즈 함에는 소형 선박 퇴치 등에 사용되는 30㎜ 함포가 장착돼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영국의 이런 주장을 '자작극'이라고 비판하며 부인했지만 이미 미국과 영국은 이란을 향해 날카로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 일본군의 파병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는 소식은 바로 이 '영국 유조선 나포 사건'이 발단이 됐다. 미국은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부근의 오만해에서 유조선 피격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고, 미군 드론이 이란군에 격추되는 사건까지 벌어진 만큼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말 트위터에서 "우리는 왜 다른 나라들의 선로를 보상 없이 (오랫동안) 보호하고 있는가"라며 "미국은 이제 막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가장 큰 에너지 생산국이 됐다는 점에서 우리는 거기에 있을 필요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해당 해역에서 미국 외에 다른 나라들이 각자 자국 유조선 보호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며 동맹 등 관련국에 국제 공조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 측으로부터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 공식적인 요청을 받은 것은 없는 만큼 요청이 들어온다면 이란 등 주변 국가의 관계까지 검토해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참여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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