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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을 마치고 지난 12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이종무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 중에 일본이 수출 규제 대상으로 지정한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의 긴급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품목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포토 리지스트(PR), 고순도 불산(HF) 등이다.
◇ 귀국 하루만에 긴급 사장단 소집…대책 논의
14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6일간의 일본 현지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 부회장은 귀국 이튿날인 13일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 사장단과 가진 긴급 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의 출장 결과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확보한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경로를 통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장의 생산 차질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부회장이 출장 기간 확보한 물량이 현지 업체에서 직접 수입하는 형태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민간 차원에서 또 어떤 혜안을 내놓을지 이목이 쏠린다.
이재용 부회장은 긴급 사장단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과 함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급 현황과 이에 따른 영향, 향후 대응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이 주말에 반도체·디스플레이 경영진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주재한 것은 지난달 1일 이후 한 달 반만이다.
회의에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김기남 부회장, 메모리사업부장 진교영 사장, 시스템LSI(S.LSI)사업부장 강인엽 사장,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이 참석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11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귀국을 하루 늦추며 일본에서 대책 마련에 집중했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 부회장이 미쓰비시와 UFJ 파이낸셜 그룹 등 3대 대형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를 주로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TV아사히는 이 부회장이 대형은행 인사에게 "한·일관계가 더 나빠질까 걱정이라는 생각을 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들 기업인과 어떤 협의를 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이러한 행보의 배경에는 일본 정·재계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금융권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삼성전자의 입장을 전달하고 조언을 구하려는 취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일본 정부가 직접 수출 규제를 주도하고 있는 탓에 현지 반도체 소재 업체와 협의를 통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예정보다 긴 6일간 일본에 머무르며 당초 예상보다 심각한 수출 규제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비책도 마련했을 걸로 보고 있다.
◇ 이재용식 '현장 경영'…위기 이후를 본다
아울러 재계는 이 부회장이 긴급 사장단 회의에 이어 앞으로 비상시에 대비한 사업 전략을 재정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이재용식 특유의 경영을 통해 "흔들림 없는 사업 추진"을 당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위기 돌파의 실마리는 이른바 ‘현장 경영’을 통해 가시화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 부회장이 국내 사업장을 찾아 현장 상황을 다시금 점검하고 대책을 점검할 것이란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 악화가 지속되면서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도 지난해 대비 반토막 난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잠정 실적 발표 기준 영업이익 6조 5000억 원, 매출 56조 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측은 ‘비상 경영’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지만, 이 부회장이 올해 들어 핵심 사업과 각종 투자 등을 직접 챙기며 신속하게 전략을 수립하면서 사실상 ‘위기 경영’에 나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이미 반영된 보수적인 경영 계획은 유지하면서도 ‘위기 이후’를 대비하는 대책 마련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 규제로 인해 삼성전자의 고민이 가장 클 것"이라며 "위기 상황을 정확히 보고 돌아온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전자가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 국내 산업계도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