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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파 정치인이 많아지면 정치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

16일 사망한 정두언 전 의원이 지난 2011년 10월 당시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 시절 국민일보 빌딩에서 열린 ‘한국의 보수 비탈에 서다’ 출판기념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연합)


[에너지경제신문=성기노 기자] 경찰이 고(故) 정두언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을 부검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타살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점과 유족의 뜻을 존중해 부검하지 않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정두언 전 의원은 전날 오후 4시 25분께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인근 CCTV 확인과 현장 감식·검시 결과, 유족 진술 등을 종합하면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 전 의원은 전날 오후 2시 30분께 북한산 자락길에서 자신의 운전기사가 운전한 차에서 내려 산 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오후 3시 42분께 정 전 의원의 부인이 그가 자택에 남긴 유서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유서에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에 차려져 이날 오전 9시부터 조문을 받는다. 조국 민정수석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등 여야를 떠나 각계각층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고 빈소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정 전 의원이 떠나기 마지막으로 본 정치권 인사는 바로 정청래 전 의원이다. 두 사람은 바로 전날인 15일 MBC ‘이승원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함께 출연해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정청래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흰색 국화 사진과 함께 "비보를 접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어제(15일) 방송할 때도 전혀 몰랐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정 전 의원이 떠나기 전 가장 원망했을 인물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일 것이다. 이 전 대통령과는 말 그대로 애증의 관계 연속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대권도전은 바로 정두언 전 의원에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정 전 의원을 찾아가 ‘같이 일을 해보자’면서 시작됐고 그때부터 전국의 전략가들을 영입해 2007년 대망의 청와대 입성 꿈을 이뤘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의 전직 의원에 불과했고, 당내 입지도 거의 전무했다. 하지만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대권도전의 기치를 다졌고, 그때부터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과정에 가장 깊숙이 관여한 1등공신이 바로 정 전 의원이었다. 그는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지 7년 남짓만에 대권도전의 꿈을 주군에게 이루어주었다.

정 의원의 대선캠프 별칭은 ‘총괄팀장’이었다. 캠프의 모든 논의 사항은 그를 통해 정리되고 조율됐고, 최종 결정과정까지 관여했다. 그는 당시 이재오 최고위원이나 이방호 사무총장과 주요 의제를 조율한 뒤 그것을 전략홍보조정회의에 올려 논의하면 최종적으로 이명박 대선후보가 참여하는 ‘6인회의’에서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만든 주인공이다. ‘6인회의’는 이명박 후보와 이상득 부의장, 최시중 전 회장, 이재오 최고위원 외에 박희태 김덕룡 의원이 참여해 일주일에 두 차례씩 열리는 비공식 최고의결기구였다. 이것은 일종의 원로회의이자상원 개념이었고 단순히 의제를 추인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회의의 의제를 입안하고 전략을 총괄했던 사람이 바로 정두언 ‘총괄팀장’이었다. 그는 당시 이명박 대선캠프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문재인 옆의 양정철’이었다. 정 전 의원은 입이 무겁고 성실했고 직설적이었지만 번뜩이는 전략센스가 있었다. 언론과의 소통을 상당히 중요시 했고, 여론을 무엇보다 신봉하는 정치인이었다.

16일 사망한 정두언 전 의원이 지난 2010년 2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신임당직자 조찬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


이렇게 정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이었지만 정권 출범 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실세에게 찍혔다.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차관의 견제에 정권 초기부터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일설에는 그가 대통령 꿈이 있다느니 MB에게 맞서다가 괘씸죄에 걸렸다느니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 언사마저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정권 출범과 함께 그는 실세들의 집중적인 견제와 감시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말대로 정치보복 수사를 받았고 10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저축은행 3억원이 그 액수였다. 대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난 그는 옥중 내내 억울함을 품고 살았다. 당시 너무 억울해 죽음으로써 결백을 주장하려고도 했다. 대법원 무죄판결로 누명을 벗었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깊고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옥살이 대가로 받은 6천 여 만원의 배상금을 힘겨운 아이들을 위해 모두 내놓기도 했다.

만약 그가 이 전 대통령을 앞세워 권력을 누리려고 했다면 벌써 유죄를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오랫동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백했다. 반면 이명박의 사람들, 그를 내친 사람들은 줄줄이 구속됐다. 저축은행 비리로 친형 이상득 의원과 사촌 처남인 김재홍 씨가 구속됐고, 김윤옥 여사의 사촌 김옥희 씨는 공천 사기로 집권 초기였던 2008년에 구속됐다. 임기 종료 시까지 비리 혐의로 처벌된 이 전 대통령의 친인척만 10명에 이른다. 방통대군으로 불린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왕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은 억대의 금품수수 김두우 전 홍보수석과 은진수 감사위원 등은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됐다. 가신그룹으로 분류됐던 천신일 회장과 팬클럽인 ‘명사랑’ 회장 정기택 씨도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등 최근 구속된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당시 저질러진 비리로 구속된 측근과 친인척만 모두 15명,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된 사람을 모두 합하면 스무 명이 넘는다.

하지만 정두언은 적어도 이 비리의 대열에는 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20명이 넘는 구속자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리려 했고, 예방을 하려고 했다. 그것이 이 전 대통령 눈에는 항명이자 자기정치로 비쳐졌고, 주변 측근들도 그렇게 그를 몰아세웠다. 그는 대선 기간 내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이 관련된 민감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지난해 초 "지난 17대 대선 때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큰 실수를 해서 각서까지 써 주고 무마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치의 최전선에서 그는 온몸으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를 완수했다. 그리고 그 즉시 용도폐기됐다.

고인과 특별한 관계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사실상 ‘자택구금’ 중이라 빈소를 찾지는 못했지만, 추모의 뜻을 전해왔다. 최측근으로 통하는 이재오 전 의원을 통해서다. 이 전 의원은 "조건부 보석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은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 외에 다른 곳에는 출입과 통신이 제한돼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은 본인이 영어의 몸이 되지 않았으면 (고인을) 만나려고 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는 말을 변호사를 통해 제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평소에 정 전 의원을 한 번 만나 뵙자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었다"며 "이 전 대통령은 오늘 아침 변호사와 조문에 대해 상의를 했다. 보석조건이 까다로워 조문을 하려면 재판부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또 며칠 걸려서 못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도 친이(명박)계 핵심으로 불리는 이재오 전 의원은 "우리는 저를 비롯해서 정 전 의원의 좋은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우리와 가까웠던 점, 함께 일했던 점, 서로 힘을 모아 대선을 치렀던 점, 그런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지난 2015년 <일요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정치철학 일단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서 그가 대한민국 정치에 심으려했던 나무가 어떤 것이었는지 엿보고자 한다.

"자기 신념을 지키는 정치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대진영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집권당 소속으로 대통령과 당 대표를 비판할 때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해야 한다. 민심과 당심을 믿고 하는 수밖에 없다. 행동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내 몫이다. 소신파 의원들은 그런 부담을 안고도 자기 신념에 따라 움직여왔다."

"역대 대통령을 봐라. YS, DJ, 노무현, MB 등 모두 소수파, 소신파 출신이다. 소신파는 외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모 국무총리처럼 이도, 저도 아닌 무색무취한 정치인은 최고 권력에 다가서지 못한다. 꿈을 크게 꾸는 정치인이 늘고 국회에 소신파 정치인이 많아지면 정치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는 게 지론이다. 자기만을 지키려고 불의에 굴하고 흐름에 편승하는 사람이 정치판에 널려있다. 이런 사람이 권력자 옆에 붙어 소장파들에게 인기영합이라고 비난을 한다."

"세력으로 만들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서로 연대해서 힘을 모을 때다. 통치형 대통령이 사라지고 소통하며 정치하는 대통령이 등장할 것이다. 세대교체, 시대교체가 정치권의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다. 내년 총선을 지나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경필, 권영진, 원희룡, 유승민, 정병국, 오세훈, 김기현, 정태근, 김용태 등이 보수진영의 세대교체를 주도할 것이다."

정 전 의원은 이렇게 일갈하면서 마지막으로 "백의종군한다. 시대변화를 주도할 개혁적 보수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대선(2017년)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의 꿈을 이루어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허망하게 스스로의 삶을 마감했다. 남경필 권영진 원희룡 유승민 정병국 오세훈 김기현 정태근 김용태 그 외의 ‘소장파’ 남은 사람들이 이제는 답을 해야 할 차례다. 정두언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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