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성기노 정치경제부장


"쇼 머스트 고 온"

발소리도 조심스럽게 낼 만큼 정두언 전 의원의 장례식장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던 문상객들 사이로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날아들었다. 한 중년 남성이 누군가가 입장한 것을 보고 던진 불만과 경멸에 찬 목소리였다. 그 남성은 "평소 소통도 하지 않고 있다가 왜 이제야 나타나느냐"며 정 전 의원의 지역구인 서대문구 정치인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서대문갑)과 김영호 의원(서대문을 초선)을 꾸짖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친이계 주류들은 더욱 위축이 됐다. ‘비주류’ 정두언 전 의원 죽음의 오랜 연원이 됐던 ‘주류’ 친이계에 보내는 원망이자 꾸짖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두언 전 의원은 요즘말로 하면 ‘아싸’(아웃사이더)였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권력을 만들기까지는 주류인 ‘인싸’(인사이더)였지만, 이상득 박영준으로 대변되는 ‘원조 인싸’의 견제와 감시에 밀려 아싸로 떨어져나가야 했다. 여기에서 그와 이명박 권력 사이에 벌어진 불행한 권력싸움의 근원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정두언의 죽음은, 노무현 노회찬으로 이어지는 우리 정치 아싸의 죽음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절망적이고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아싸가 인싸에 포용되고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는 세상. 아싸는 언젠가는 인싸의 복수와 견제에 철저하게 짓밟히는 세상. 그런 현상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중간자들’의 무관심이 더해져 우리 사회가, 우리 정치권이 점점 절망과 무력함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빠져들고는 있지 않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7월 4일, 여당의 인싸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일본통’ 강창일 의원은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도 원칙과 명분에 집착하다 보니 시기를 놓쳐버린 부분이 있다"고 우리 정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에 의총장 앞줄에 앉아있던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강 의원을 향해 손가락으로 ‘엑스(X)’표시를 하며 발언을 제지하고 나섰다. 여당의 불협화음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당대표의 원려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인싸의 독단적인 공론화 전횡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000년대 초반의 민주당 정풍운동과 그 뒤 일어난 한나라당 소장파의 돌풍을 기억할 것이다. 이때만 해도 정치권에는 인싸가 권력의 중심에 있기는 했지만 아싸가 씨앗을 틔울 수 있는, 포용과 관용이라는 좋은 텃밭이 있었다. 조금 설익고 어설펐지만 그 아싸의 맹아는 큰 나무 뒤에서 때로는 훌륭한 배경이 됐고 때로는 좋은 자양분이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소중한 아싸들이 하나둘씩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친이-친박계의 인싸가 집권하면서 총선 때마다 공천학살이 일어났다. 아싸들의 싹을 아예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해찬 당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인싸들 주변에 쓴소리를 하는 아싸들이 얼마나 존재할까. 적폐청산이라는 당의 공감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속도조절과 방향을 놓고 문제를 제기하는 아싸가 있을까. 총선을 앞두고 아싸는 사라지고 ‘공천바라기’들만 남았다. 혹자는 이를 ‘적대적 공생관계’로 표현한다.

정두언 전 의원은 운명을 달리하기 10여일 전부터, 마치 자신의 죽음을 준비라도 하듯 친하게 지내던 ‘동생’ 등 지인들과 자주 저녁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동생들의 과거 이야기와 ‘재롱’에 박장대소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블랙아웃이라도 된 듯 정두언은 그렇게 홀연히 자신의 자취를 거둬가 버렸다. 한 후배는 정 전 의원의 빈소에 경건한 마음으로 가기 위해 몇 달 동안 소중하게 기른 수염을 자르면서 눈물을 흘렸다며 슬퍼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는 고통으로, 누구에게는 추모로, 누구에게는 희망으로도 기록돼야 한다. 아싸 정두언은 그렇게 갔지만 인싸의 일방도로만 뻗어 있는 여의도에 아싸의 샛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양성이라는 지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정두언의 죽음은 아싸의 죽음이다. 희망이 없는 인싸는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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