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반일 감정선 건드려 재미보는 여권, 지지율도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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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민정수석이 연일 친일 반일 문제로 피아를 명확히 구분하며 이슈를 제기하고 있어 그 배경이 관심이 쏠린다. (사진=연합) |
패스트트랙으로 장기 공전됐던 국회가 80여일만에 겨우 국회정상화 합의를 봤다. 하지만 아직까지 추경이 겉돌고 있는 등 국회는 반 공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친일 프레임’으로 여야가 맞붙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여야 지도부의 배수진으로 정국은 꽉 막혀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여당이 ‘친일 프레임’으로 자유한국당을 압박하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여당이 정국 주도권을 잡아가는 모양새이지만 추경처리 등 실리를 챙기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여권의 친일 프레임 공방 대표선수는 조국 민정수석이다. 지난 정권 때의 민정수석들과 비교해볼 때 조 수석의 발언은 파격을 넘어 분명한 의도와 지향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와대도 ‘조 수석의 개인의견’이라며 사실상 발언 프리패스를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 수석은 최근 10일 동안 일본과 관련한 게시물만 40여 건을 올렸다. 하루에 5건 정도를 올린 셈이다.
조 수석 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적과 아군을 명확하게 가르는 일종의 ‘선긋기’다. 학자 출신인 조 수석 스타일 상 사회현안에 대해 날카롭게 선을 긋는 이분법적인 잣대는 잘 들이대지 않는 편이다. 논리적이고 상황의 전후좌우를 파악하는, 균형감 있는 인사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한 진영논리를 구사하고 있다. 작심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많은 글의 퍼레이드를 펼칠 수 없다. 당연히 청와대와의 사전교감설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최근 일련의 조 수석 글을 보면, 그가 내년 총선에 역할을 하기 앞서 던진 출사표로 보면 된다. 조 수석은 사실상 정치참여 선언을 한 것이다. 그것도 한일관계, 친일, 반일 등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이슈를 지렛대로 삼았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조 수석이 이 판에서 굳이 뾰족한 칼날을 들이밀 필요가 없었다. 이번처럼 총대를 온전히 메는 경우, 조 수석의 성향상 독자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총선을 앞둔 여권 컨트롤타워의 역할배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 수석은 ‘문재인 2.0’으로 불릴 만한 인물이다. 여권에서 가장 문재인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다. 바로 그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일본 경제보복 정국을 이끌고 있다. 이것은 내년 총선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다. 조 수석은 앞으로 더 파격적인 언행과 전사 기질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조국 수석이 방아쇠를 당겨 총선전쟁은 이미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당에서는 이인영 원내대표가 한일 경제.외교 갈등을 한일 축구경기에 비유하며 "우리 선수나 비난하고 심지어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그것이야말로 신(新)친일"이라고 비판하며 조국 수석을 백업해주고 있다.
이렇게 여권이 ‘친일 프레임’을 전면에 꺼내 든 것은 바로 여론이다. 국민의 감정선을 가장 잘 건드릴 수 있는 소재가 바로 친일이라는 소재다. 그만큼 여론전에서도 유리한 전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여의도연구원’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자유한국당 지지율이 20%대로 다시 곤두박질치는 것)를 언급하며 "한국당이 선거 전략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어떤 전략을 택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국민에게 지지를 받을지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한 부분도 최근의 떼쓰기 전략과 함께 일본 경제보복 정국 대처를 염두에 둔 발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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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여권의 친일 프레임 공격에 밀리고 있다.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사진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4월 3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4·3 보궐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 |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도 반등하는 분위기다. YTN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5~19일 전국 성인 2505명을 상대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0%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51.8%를 기록했다. 지난주보다 4.0% 포인트 오른 수치로, 최근 8개월 만에 최고치다. 민주당도 지난주보다 3.6% 포인트 상승한 42.2%를 얻었다. 반면 한국당 지지율은 하락세로, 지난주보다 3.2% 포인트 떨어진 27.1%로 나타났다. 같은 기관 조사에서 황교안 대표가 선출된 2·27 전당대회 직전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일간 집계로 보면, 한국당 지지율은 지난 15일 31.3%에서 16일 28.2%, 17일 26.7%, 18일 26.0%, 19일 25.9%를 기록하는 등 하락세가 뚜렷하다(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한국당의 하락세는 여권이 친일 프레임을 연일 날리며 총공세를 펴는 빌미를 주고 있다. 최근 한 정치전문가는 "과거에는 그래도 보수정당이 우리 사회의 주류였고 정보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존재감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한국당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그들을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평가하지 않는 시대상황 때문에 한국당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여권의 친일 공격에 한국당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죄다 친일파라고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 태도냐"며 "친일, 반일 편 가르기 하는 게 과연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냐"고 성토했다. 야권에서는 친일 프레임 공격을 당할 때마다 "여권이 나라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총선에만 목을 매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은 조금도 물러설 의향이 없어보인다. 일본 경제보복 정국 초기에 친일 프레임으로 아젠다를 선점해야 내년 총선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여권은 친일 프레임을 지렛대로 한국당을 압박하며 국회 정상화를 유도할 것이다. 지지율 하락으로 점차 코너로 몰리고 있는 한국당도 버틸 재간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친일 프레임은 여권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국민의 대일 감정과 연동돼 바람을 잡을 수는 있지만, 경제피해가 커지게 되면 그 책임이 오롯이 여권으로 돌아간다. 적당한 선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끝내야 한다. 일단 조국 수석이 주변 인사들에게 ‘이제는 일본 경제보복과 관련해서 SNS 글을 쓰지 않겠다’는 언급한 것을 보면 여권이 템포 조절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패스트트랙에 이어 친일 프레임 이슈로 여야의 ‘헛심 공방’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성기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