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철(한국공인회계사회 사회공헌·홍보팀장)
국내경제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좋지 않은 시그널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유관기관과 전문가들이 내 놓은 앞으로 경기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여기서 시그널은 일종의 신호(sign)다. 넓게 보면 징조(徵兆)이자 조짐(兆朕)이다. 조짐이 길흉이 일어날 기미가 미리 보이는 변화 현상으로 주관적이라면, 징조는 사건이 일어날 기미로 객관적 현상이다.
시그널은 날씨와 계절에 있다. 우리 조상들은 서리가 많이 내린 날은 맑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날씨가 좋은 날 야간에 복사냉각이 심하여 지면이 차가워지게 된다. 그러면 지표부근의 공기중에서 수증기가 승화하여 서리가 되어, 이런 날은 맑다. 러시아인들은 동물에게서 앞으로 다가올 날씨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고양이가 몸을 둥글게 말고 발로 코를 가리고 자고, 까마귀는 부리를 날갯죽지 아래 감추고 참새들은 관목덤불 속에 숨고, 피리새들이 지저귄다. 그러면 추운 날씨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조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동물들이 보이는 몸짓(시그널)에서 계절과 날씨를 감지하는 것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단단한 기둥처럼 고르게 피어 오르면, 이는 좋은 날씨를 예고한다. 이와 반대로 연기가 여러 방향으로 이리저리 흩어지면 곧 폭풍우가 다가온다는 징조다. 이처럼 자연과 자연현상이 주는 시그널은 인간에게 소중한 교훈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시그널은 중요한 메시지를 건넨다. 도로 위 신호등은 중요한 교통 시그널이다. 운전자가 시그널을 무시하고 주행하면 벌금청구서가 나가고, 보행자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도 시그널은 중요하다. 경기 중 상호교통 할 수 있는 전달수단(communication)으로, 필요한 사항을 알려주는 심판의 신호다. 운동선수가 시그널을 무시하고 경기에 임하면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일상에서 좋은 시그널이든 나쁜 시그널이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발간된 책‘시그널’을 흥미롭게 읽었다. 책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커서 울림이 있다. 전 백악관 경제보좌관 피파 맘그렌(Pippa Malmgren)이 저술한 책이다. 경제학자이자 정책전문가인 저자는 "일상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신호가 격변기 경제의 항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하며, "불안이 커져 갈수록 예측은 더 어려워지지만, 시그널(일상의 작은 신호)로 미래를 감지하고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시그널 사례다. 첫째, 우리가 시장에서 체하는 장바구니 물가, 인플레이션 압박 신호다. 둘째, 공사 중인 집 주변 건물이 여러 날 동안 공사 없이 방치하면, 건설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자. 결론적으로 저자는 일상의 작은 신호를 포착하면 다가올 세계 경제의 격랑 속에서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경제에도 시그널은 묵직하다. 대내외 여건과 다양한 경제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경제주체들이 이를 통해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경제변수들은 각종 경제지표로 나타나고 여러 시그널을 보낸다. 경제시그널이 무서운 이유는 피부로 체감할 수 있고 대응으로 나타나서다. 좋든 나쁘든 경제시그널을 오판하거나 잘못 해석하면 엉뚱한 쪽으로 공이 튄다. 섯부른 헛손질이 자칫 화(禍)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시그널, 제대로 읽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래야 잘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이라는 시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좋든 나쁘든 시그널을 올바로 읽고 준비하자. 그래야 담쟁이(우리)가 절망의 벽을 넘어 다시 희망의 시그널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