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김선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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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그 탄생부터 매우 논쟁적이었다. 원자력의 태생은 ‘핵무기’이며 핵연료의 재처리는 ‘핵확산의 잠재적 위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원자력 산업은 2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었던 20세기 초중반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의 부정적 이미지에 연결되곤 했다. 녹색(환경) 운동 진영은 원자력을 ‘인류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탈핵운동을 범지구적으로 확산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시민사회의 일부 반대에도 원자력은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장해나가는 흐름을 보였다. 반핵 운동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쓰리마일(1979년), 체르노빌(1986년),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후쿠시마(2011년) 사고 여파는 매우 컸다. 원자력 사고의 피해와 잠재적 위험은 많은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을 높였고, 결과적으로 많은 원자력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핵폐기물에 대한 우려와 안전한 보관에 대한 이슈는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발전자원으로 만들고 있다.
◇기로에 서 있는 원자력, 그 이유는 경제성
우리나라를 떠나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산업 관점에서 핵폐기물 논란, 대중의 선호 여부와 별개로 원자력 발전이 쇠퇴의 기로에 놓인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그 시작은 1990년 초중반 전력산업 개방, 시장화 흐름부터이다. 국가의 적극적 선택이 아닌 ‘경제성’ 중심으로 작동하는 경쟁 시장에서 가장 긴 시간의 건설기간과 큰 규모의 자본이 투입되고 30 ~ 50년 동안 장기간에 걸쳐 그 비용과 수익을 회수해야하는 원자력 발전 방식은 민간 자본시장에서 고(高)위험, 저(底)이익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투자 대상이 되었다. 또한,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유가 안정화, 가스 가격 하락은 원자력 발전의 경제적 우위를 붕괴시켰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공적 자금은 재생에너지 R&D와 확산에 활용되었고 결과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경쟁력이 높아진 부분 역시 원자력 발전의 효용성을 낮추고 있다. 존 로우(John Rowe) 미국 최대 원자력 사업자 엑셀론(Exelon) 전 회장은 “태양광, 풍력, 값 싼 천연 가스로 전 세계 원자력 발전소의 전망이 현저하게 악화되었다. 원자력 르네상스는 끝났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원자력 수출 시장 전망, 매우 흐림
영국이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는 것은 매우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의 희망과 다르게 시장에서 원전 유치는 ‘채산성 문제’로 난항 중에 있다. 원전 업계 및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연 100조 시장 전망은 희망적인 수치이나 현실은 매우 어렵다. 2014년 우리나라와 수주 경쟁에서 이기고 터키 원전 사업권을 따낸 일본은 2018년 12월 안전기준 강화로 계획보다 2배 늘어난 5조엔(약 49조 5천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와 경제성 문제로 원전 건설 사업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기술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인증을 받는 우수한 기술이라 해도 전 세계 시장 전망 자체는 매우 좋지 않다.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원전 건설을 고려하나 대규모 자금 투자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데다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은 핵 확산 우려로 미국의 승인이 필요한 원전 수출에 있어 미국의 협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 러시아 등 국가주의 성향이 강한 일부 국가 중심으로 원전 확장이 선명할 뿐 다수의 국가에서는 신규 투자가 어렵고 매우 제한적이라 볼 수 있다.
◇원자력 정책의 방향에 대안 제언
2017년, 우리나라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하며 원자력 발전의 점진적 감축을 선언했다.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에 따르면 원전은 ’17년 24기에서 ’22년 28기로 증가하다가 ’31년 18기, ’38년 14기 등으로 단계적으로 감축할 예정이다. 이미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원전을 폐지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이러한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수급상황, 기술, 경제 여건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는 계획과 실행 사이에 많은 불확실성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 방안에는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현재 축소 정책을 지속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완전한 통합과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시장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기술, 사회, 경제적 여건이 바람과 다르다면 실행의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는 불확실성을 고려한 유연한 정책 결정으로 원전 폐쇄 일정을 조절하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소위, ‘나쁜 것 중의 나은 선택’으로 볼 수 있는데, 여건에 따라 원전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 불확실성 증가로 원전 투자가 지연, 취소되는 유럽, 미국 다수 국가에서 나타나는 흐름이기도 하다. 감가상각이 충분히 이루어진 원전을 리트로핏(Retrofit, 성능개선)하여 필요에 따라 10년에서 50년까지 그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신규 원전 건설보다 경제적이고 입지 선정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낮다는 이점이 있다. 세 번째는 원전 업계의 요청대로 입지 선정이 완료된 신한울 3·4호기를 신규 건설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중요한 의사 결정 시점을 뒤로 미루는 실물옵션적인 접근법이라 할 수 있는데, 원전 생태계 존속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높을 때 그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력수급 관점에서는 두 번째 방안까지만 고려해도 원전 확장의 필요성이 낮다. 따라서 전력 산업 전체가 원전 산업 존속을 위해 비효율성을 감당해야한다는 비판적 관점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요컨대, 원전 확장을 위한 논의는 경제성, 사회적 지지 등을 고려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실행 가능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2009년 12월 27일, 원전 산업은 놀라운 성과와 장밋빛 전망에 축배를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 건설 사업으로 UAE 원전사업 수출에 성공한 그 당시만 해도 2030년까지 세계 원자력 시장이 2배로 커지니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력 양성, R&D 투자로 확장된 시장에 준비하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실제 전 세계 원전산업은 어려움에 처한 상태였고 2011년 9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모든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과거의 원전 확장 논리는 이제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으로 우리의 경쟁력을 새롭게 찾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