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한편 국내에는 일부 인터넷 블로그와 SNS를 통해 ‘태평양의 물은 충분히 많다.’, ‘후쿠시마 오염수 다 합쳐봤자 얼마 되지 않는다’라는 글들이 퍼지고 있다. 얼핏 보면 맞는 이야기이다. 100만 톤의 물이라고 해봤자 가로, 세로, 높이 1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태평양 한가운데 이 정도 물을 더한다고 해도 지도상에 작은 점조차 찍기 힘들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되는 방사능 오염수 역시 과거 2천 번 이상 실시되었던 대기권 핵실험, 그동안 바다에 무단으로 투기한 핵폐기물, 체르노빌 사고 등에 비해 적은 양이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바다에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투기했고, 러시아도 1962년부터 1992년까지 핵추진 잠수함의 노후 원자로를 포함해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을 동해와 캄차카해에 버렸다.
이런 역사 때문에 전 세계 대부분에서 인공 방사능 핵종이 검출된다. 2018년 한수원이 발표한 환경 방사능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핵발전소 인근 지역이든 비교지역으로 잡은 떨어진 지역이든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세슘-137 같은 방사성 물질이 측정되었다. 세슘-137은 자연상태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대표적인 인공방사성 물질이다. 1945년 핵무기를 처음으로 터뜨린 이후 수십 년 동안 ‘태평양은 넓으니 괜찮다’라고 애써 무시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지질시대를 구분하면서 인류세(Anthropocene)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인류세의 유력한 증거로 방사성 물질, 플라스틱, 닭 뼈 같은 것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세플라스틱이나 수은 같은 물질들이다. 지난 100여 년 이상 인류가 만든 플라스틱이 바다로 떠내려가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 중 하나이다. 미세플라스틱은 물고기 같은 대형 생물체뿐만 아니라, 플랑크톤 몸속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들 미세플라스틱이 먹이사슬을 거쳐 대형 생물체까지 전달될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중금속 문제 마찬가지이다. 식약처는 중금속 오염 정도가 높은 생선 내장을 될 수 있는 대로 섭취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특히 임신부와 유아, 어린이에게는 대형 육식성 어류(참치, 새치, 상어 등)의 주당 섭취 한도를 권고했다. 이에 따르면 임산·수유부는 1주에 100g, 유아나 어린이는 주당 25~65g 이하로 대형 육식성 어류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들 육식성 어류에는 무시할 수 없는 양의 중금속 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안일한 사고와 무책임한 배출행위가 지구 환경에 미친 영향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사능 오염수 배출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가동하여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겠다고 수차례 밝혔으나 일본 정부의 기준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주변국으로서 오염수 방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을 비판하고 더 이상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 역시 지극히 당연하다. 이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바다로 누출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추가적인 방사능 오염은 막아야 한다. 단지 비용이 적게 들고 편하다는 이유로 방사성 물질을 바다로 계속 버린다면, 미래세대는 물론이고 현세대도 그로 인한 피해를 그대로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