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日과 대화 노력-美합의 과정 상세히 소개...우려 불식나서
일본, 한일갈등 한국에 책임전가 지속..."국가간 신뢰훼손 행위 우려"
트럼프, 한일 갈등 '거리두기' 행보...한일갈등에 北·중 수혜가능성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 |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항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한국, 일본, 미국 등 3국이 연일 들썩이고 있다.
청와대는 그간 일본과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이 이를 무시했고 많은 고민과 검토 끝에 국익에 따라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과 긴밀한 소통이 이어졌다는 점을 거듭 피력했다.
문 대통령의 강경 대응에도 일본은 한국이 오히려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 관계를 해쳤다고 비판하며 한일 갈등의 원인과 책임을 한국 측에 돌리는 등 '망발'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그간 한일 갈등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미국이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두고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피력한 만큼 향후 한미일 3국간 외교 셈법이 한층 더 복잡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 청와대, 한미동맹 균열설 일축...일본엔 강경대응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은 8월 22일 오후 6시 20분께였다. 미국은 이른 아침이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나온 오후 6시 30분께 총리 관저를 나가면서도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3일 한국, 미국,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지소미아 결정을 두고 여러 분석과 의혹, 우려 등이 나오면서 청와대는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는 하루를 보냈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해온 일본의 불성실한 태도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강한 우려를 표시한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이번 결정이 향후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본과의 갈등을 계기로 우리나라 소재, 부품 산업은 물론 안보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통해 "지소미아 종료는 많은 고민과 검토 끝에 국익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며 상당 시간을 할애해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지소미아 종료 직전까지 이어진 일본과의 대화 노력을 소개했다.
김 차장은 지난 7월 고위급 특사 두차례 일본 파견, 8월 초 주일 한국대사의 일본 총리실 고위급 협의 시도 등을 일일이 거론했다.
이 과정에서 이번 광복절에 우리 고위급 인사가 일본을 방문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 내용을 일본 측에 미리 알려줬다는 사실이 처음 소개됐다.
김 차장은 우리 정부의 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응은 단순한 '거부'를 넘어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까지 훼손할 정도의 무시로 일관했으며,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이런 태도가 지소미아 종료에 결정적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일부 우려에 대해서도 상당 시간을 들여 자세하게 설명했다.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하기까지 미국과 어떤 소통이 있었는지, 미국은 왜 우리에게 실망스럽다고 밝혔는지 등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공을 들이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앞서 미국 국방부는 22일(현지시간)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의 지소미아 경신을 하지 않았다"며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또 캐나다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미국)는 한국이 정보공유 합의에 대해 내린 결정을 보게 돼 실망했다"며 "두 나라 각각이 관계를 정확히 옳은 곳으로 되돌리기 시작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차장은 "미국이 우리에게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했던 만큼 실망했다는 표현은 당연하다"면서도 "한미는 (안보 컨트롤타워인) NSC 간 이 문제로 7~8월에만 총 9번의 유선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미 백악관 NSC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은 물론 지난달 24일 백악관 고위 당국자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도 이 문제를 협의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국내 소재, 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 역시 우리 독자적인 정보수집, 국방력 등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 "이번 결정이 한미동맹 약화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해 지금보다 굳건한 동맹 관계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국방예산 증액, 군 정찰위성 등 전략자산 확충을 통한 우리의 안보역량 강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 |
◇ 일본, 대화 거부하고 한일갈등 책임 한국에 전가 '눈살'
정부가 거듭 일본에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자고 피력한 끝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음에도 일본은 오히려 한일 갈등의 책임을 한국 측에 돌리며 "극히 유감이다"고 밝혔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등 한일 갈등에 대해 협의도, 대화도 할 수 없다는 막무가내식 원칙을 고수하는 만큼 우리 정부와의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23일 오전 선진 7개국(G7) 프랑스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러 하네다공항으로 가는 길에 관저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등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 관계를 해치는 대응이 유감스럽게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정부를 겨냥해 '신뢰 훼손'이라는 용어를 징용배상 판결을 비롯한 일련의 한일 갈등 고조 과정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국제사회를 향해 양국 간 신뢰를 깨는 것은 한국이라는 입장을 거듭 반복함으로써 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각인시키려는 홍보전략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대내외적으로 '한국 측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취했음에도 우리 정부가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곤혹스럽다'는 주장을 거듭 펼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배경 중 하나로 '일본 정부의 신뢰 훼손'을 꼽은 만큼 이에 대한 맞대응 성격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수의 일본 정치권 인사들도 흥분했다.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외무 부(副)대신은 지난 22일 밤 BS후지 프로그램에서 이번 결정에 "한마디로 말하면 어리석다"며 "북한을 포함한 안보 환경을 오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토 부대신은 "(파기는) 있을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나카타니 겐(中谷元) 전 방위상은 기자들에게 "매우 비상식적이고 최악의 판단"이라며 "국가의 장래 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한국정부의 결정을 비난했다.
에토 세이시로(衛藤征士郞) 자민당 외교조사회장은 "한국이 왜 이렇게 초조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AP/연합) |
◇ 트럼프는 침묵...한일싸움 승자는 따로있다?
이렇듯 한일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연일 한일 갈등과 '거리두기'를 이어가고 있다.
'거리두기'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9일 뉴욕에서 열리는 재선 캠페인 기금모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기에 앞서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눈 대화만 봐도 느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지 않아 걱정된다. 나는 일본이 서로 잘 지내기를 바란다"며 "(현재 상황은) 우리를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한일 갈등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 역할을 해주길 내심 바랐지만, 미국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양국 갈등이 우려된다는 원론적인 입장문만 내놓다가 실제 한국이 예상치 못한 결정을 내리자 '화들작'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당장 한미 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현재로서 조금이나마 확실한 것은 한일 갈등에 중국 측은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무역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은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미국이 가장 실망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화망에 따르면 중국 관영 매체들과 관변 학자들은 이번 지소미아 종료로 한일 갈등이 격화되고 미일 군사 협력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의 전략적 입지를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난 중국사회과학원 부연구원은 "지소미아는 한미일 동북아 3각 동맹의 중요한 토대"라면서 "이 때문에 미국은 한일 안보 분야에 조율에 나서 한일 관계가 완전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미국 언론도 한미일 동맹 균열의 승자는 북한과 중국이라고 분석했다.
CNN은 23일 '악화하는 한일 싸움에서 북한과 중국이 커다란 승자(huge winners)'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전하면서 한일 균열이 북한에 대응한 안보 협력을 악화시키고, 잠재적으로 중국에 승리를 안겨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오랜 동맹들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관심이 미국의 적들에게 이런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또 다른 사례라고 말한다고 CNN은 전했다.
이 방송은 "중국과 북한은 오랫동안 한미일 삼각 동맹을 훼손하고 동북아에서 미군의 주둔을 줄이려고 노력해왔다"며 "삼각 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서로 불신이 깊은 한일 관계"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역내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이 더 대담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이 방송은 분석했다.
중국은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섬(센카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주한미군에 배치된 탄도탄 요격미사일인 사드(THAAD)를 놓고 한국에 압력을 가해왔다.
이밖에 뉴욕타임스(NYT)도 사설을 통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과 이에 대응한 일본의 무역 보복, 그리고 한국의 지소미아 포기 등 일련의 갈등을 언급하면서 "이 모든 것이 양국의 경제와 안보에 명백하게 해를 끼치고 있다"며 "미국은 오래전에 개입해 싸움을 말렸어야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NYT는 "중국과 북한을 제외하면 모두가 지는 싸움"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가장 가까운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경제신문 송재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