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알팔리 前장관 감산 주도했지만
고유가 실현 실패로 입지 좁아져
신임장관, 30년 석유전문가로
기존 감산정책 고수 의지 재확인
일각선 "변화보다 권력 키우기" 지적
셰일 증산·원유 수요둔화도 난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사진=AP/연합)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에너지부 장관을 전격 교체하면서 향후 국제유가 향방에 관심이 집중된다. 기존 장관이었던 칼리드 알팔리는 국영기업 아람코 회장에서 물러난데 이어 장관직도 내려놨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 장관을 교체할 때마다 관련 정책에도 큰 변화가 따랐던 만큼 이번 인사 역시 산유국들의 국제유가 전략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정상적인 가격보다 배럴당 15달러나 저렴해진 만큼 신임 에너지부 장관은 더욱 과감한 감산 조치를 통해 유가 끌어올리기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시장에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맹주격인 사우디의 의지와 결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임 장관은 기존의 감산 정책을 이어갔겠다는 의지만 거듭 확인했을 뿐 향후 전략이나 방향성에 대해서는 청사진을 내놓지 않아 그의 속내가 무엇인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 ‘오른팔’ 교체한 빈살만 왕세자…장관에 처음으로 왕족 임명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사진=AP/연합)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8일(현지시간) 압둘아지즈 빈 살만(59) 왕자를 에너지부(석유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칙령을 내렸다. 사우디 정부는 과거 20년 넘게 석유장관을 지낸 알리 알 나이미를 해임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오른팔로 불리는 칼리드 알팔리를 2016년 5월 에너지 장관에 임명했다. 에너지 장관에 오른 알팔리는 OPEC의 대대적 감산을 주도하며 사실상 세계 원유시장을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살만 국왕은 알팔리 장관의 정책 수행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칼리드 알팔리는 지난 2일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회장에서 물러난 데 이어 장관직에서도 물러나게 됐다. 살만 국왕은 지난달 말 산업에너지·광물부를 산업광물부와 에너지부로 분리 개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캐나다 투자은행 RBC캐피털의 헬리마 크로프트 글로벌 상품전략가는 "(이번 인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고 평가했다.

압둘아지즈 신임 장관은 살만 국왕의 넷째아들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형이다. 그는 1985년 당시 석유부장관 보좌관으로 공직에 입문해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석유부 차관보, 차관을 차례로 거쳤고 2017년부터는 에너지 담당 국무장관을 지냈다. 특히 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 사우디 대표단으로 자주 참석하며 석유 분야의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현재 OPEC이 추구하는 감산 정책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다.

그간 왕명을 받아 사우디의 석유 정책을 총괄하는 석유부 장관 자리는 왕가가 아닌 전문 관료가 모두 임명됐다. 알사우드 가문의 왕족이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압둘아지즈 왕자가 처음이다. 내부 권력 경쟁이 치열한 사우디 왕가는 ‘국체’라고도 할 수 있는 석유 정책을 책임지는 에너지부 장관에 왕가와 혈연관계가 없는 전문 관료를 임명하는 방식으로 계파 간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 왕족 임명에 따라 왕가 일각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처럼 사우디가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배경에는 국제유가가 60달러 수준을 하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공개(IPO)를 앞둔 아람코의 가치를 높이려면 유가가 상승해야 하는데 사우디 왕가가 원하는 수준만큼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람코의 IPO는 당초 지난해 말로 예정됐으나 내년 또는 2021년으로 미뤄졌다.


◇ 원유정책에 변화 잇따르나…‘감산 유지’ 전망에 무게

지난 1년 WTI가격 추이(사진=네이버금융)


전문가들은 압둘아지즈가 신임 장관으로 임명되어도 앞으로 사우디가 자국내 원유 정책이나 OPEC+(감산에 참여하고 있는 OPEC·비(非)OPEC 산유국) 감산합의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는 30여년간 석유 및 에너지 담당자로 일해온 석유 전문가로 꼽힌다.

코메르츠방크는 최근 투자노트를 공개하면서 "새로운 에너지 장관은 전임자의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빈 살만 왕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에서도 매파로 통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가격과 시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원유 공급을 줄이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사우디 석유정책인 감산에 의한 유가 상승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로프트는 "시장은 감산에 합의하는 산유국들의 결속력을 확인하고 싶다"며 "특히 사우디가 다른 산유국들의 감산이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OPEC의 지난 8월 원유 생산량은 이라크와 나이지리아의 증산으로 인해 올해 들어 첫 전월대비 생산량 증가를 기록했다.

압둘아지즈 신임 장관도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다른 산유국과 계속 협조해 석유 시장이 균형을 잡고 OPEC이 주도한 원유 감산 합의가 모두의 의지로 유지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산유국들은 안정적인 유가를 원한다면서 현재의 감산 정책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우디가 감산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우디의 이러한 인사변화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의 닉 커닝엄 연구원은 "신임 장관이 임명되어도 감산 정책이 기존과 동일하면 인사변화에 대한 배경에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OPEC+의 감산노력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아직도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신임 장관이 어떻게 유가를 끌어올릴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커닝엄 연구원은 "이번 인사는 정책에 대한 변화보다 빈살만 왕세자가 권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단행한 것 같다"며 "왕족이 에너지 장관에 임명됨으로써 빈살만 왕세자가 에너지부에 이어 사우디 원유 정책까지 사실상 주도하게 된 셈이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는 아람코의 IPO를 위해 총력전을 펼칠 수 밖에 없다. 사우디는 석유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사우디 경제구조를 개혁하겠다는 중장기 전력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이에 빈 살만 왕세자는 오는 2020~21년 아람코 상장을 통해 2조 달러를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원유 시장에서는 앞으로 유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 국제유가는 4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어 지난 9일(현지시간)에는 감선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사우디의 입장 확인으로 전일 대비 큰 폭으로 올랐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2.4%(1.33달러) 상승한 57.8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11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1.71%(1.05달러) 상승한 62.59달러를 기록했다.


◇ 유가상승 위해 극복해야 할 난관 산적

CNBC와 인터뷰하는 댄 브룰렛 미 에너지부 부장관(사진:CNBC 화면캡쳐)


그러나 사실 현재 원유시장에서는 경기침체에 따른 원유 수요둔화가 감산 정책보다 더욱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글로벌 경기침체를 야기시키는 미중 무역전쟁 때문에 국제유가가 정상적인 가격보다 배럴당 15달러나 싸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우디는 고유가가 절실한 만큼 압둘아지즈 신임 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컨설팅업체 에너지 애스팩츠의 석유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 암리타 센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OPEC+ 동맹이 글로벌 원유 재고를 줄였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전적 무역정책 때문에 가격을 띄우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산유국들이 유가 공급량을 줄였지만,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로 원유 수요가 계속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유가를 끌어올리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센은 이어 "원유 재고가 줄고 시장에는 공급이 빠듯해지는 등 정책적 견지에서는 사우디가 실행한 모든 것이 작동했지만 유가는 배럴당 60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급이 매우 빠듯한 게 펀더멘털(기초여건)"이라며 "재고 수위와 타임 스프레드(인도 시기가 다른 동일 상품의 가격 차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면 유가가 지금보다 배럴당 15달러는 높아야 정상"이라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원유 재고량은 2017년 3월 고점으로부터 2018년 9월까지 17% 가량 급감했지만, 그 이후 수요 위축과 함께 감소량의 절반 정도가 복원된 상황이다.

미국의 산유량 증가도 사우디에게 또 다른 난관으로 꼽힌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는 올해와 내년 미국의 산유량이 각각 1300만 배럴(bpd), 1350만 배럴(bpd)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자국내 산유량을 끌어올려 하루에 1230만 배럴을 생산하는 최대 산유국으로 등극했다. 가뜩이나 세계 원유시장은 수요둔화와 ‘셰일오일 붐’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미국의 산유량이 내년까지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인해 유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댄 브룰렛(Dan Brouillette) 미국 에너지부 부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압둘아지즈 신임 장관은 매우 험난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며 "미국 산유량이 내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이란 점은 유가에 계속해서 하방압력을 넣게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유가를 움직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지 않다"며 "미국은 유가방향에 관계없이 에너지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석유자원 개발로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을 높인다는 국정 비전을 강조해왔다.

한편, OPEC+은 12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에서 만남을 갖고 원유 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책들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산유국들은 남은 기간 동안 얼마나 원유 생산량을 줄일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드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OPEC+은 연말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다시 만나 2020년에 추가적인 감산이 필요할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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