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유럽 두 번째 컨소시엄 추진…폭스바겐, 스웨덴 업체와 손잡아
"기술력 높이고 유럽·중국 등과 컨소시엄 구성 수출 다변화 해야"
"LG화학·SK이노 집안싸움은 경쟁국만 이득…원만한 합의 기대"
![]() |
▲한국과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유럽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하고 있는 배터리. |
[에너지경제신문 김민준 기자] 한국과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유럽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두 번째 유럽 배터리 생산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을 확고히 하기 위해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외신들은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아시아 업체들과 경쟁할 유럽 배터리 업체를 물색하는 BMW 등 독일 업체들이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유럽의 자동차 업체들은 기존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 중심으로 역내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을 재정비하는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배터리 제조 컨소시엄을 설립, 약 60억 유로(약 7조80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컨소시엄에는 민간 부문에서 40억 유로, EU 승인에 따른 국고 지원금 12억 유로 등을 투입할 예정이다.
아울러 유럽 기업 간 협력도 속속 본격화하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지난 8일 스웨덴 배터리 업체인 노스볼트와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폴크스바겐이 노스볼트에 9억 유로를 투자하며 연간 생산능력은 16GWh 규모다. 합작사는 내년부터 독일 중북부 잘츠기터에 공장 설립 공사를 시작해 이르면 2023년 말부터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은 앞서 2028년까지 70종의 새 전기차 모델, 2200만대를 생산하기 위해 2023년까지 300억 유로 이상 투자한다는 로드맵을 밝힌 바 있다. 폴크스바겐은 기존에 LG화학 등으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었고, SK이노베이션과는 합작사 설립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합작사 설립 논의 후발 주자인 노스볼트와 협업을 먼저 공식화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4%에 머물렀던 유럽이 이처럼 한국과 중국을 뒤따라 잡으려는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유럽 국가와 업체들끼리 공조가 강화할수록 기존 배터리 공급자였던 국내 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도 만만치 않다. 최근 수년간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전기차에 외국산 배터리 사용을 금지하고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했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삭감해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자 CATL, 비야디(BYD), 궈시안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3일에는 폴크스바겐이 비야디와 배터리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에 이어 유럽까지 치고 나가는 사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크게 선전하지는 못하는 데다, 최근에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까지 겹쳐 뒤숭숭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은 이미 아시아 물량을 가능한 줄이고 내재화한다는 전략을 발표했고, 노스볼트와의 합작사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또한 EU와 유럽투자은행(EIB) 등은 2017년 전기차 배터리 연구개발과 제조를 목적으로 유럽배터리연합(EBA)을 만들었다"면서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은 특정 업체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하고, 지역 내 생산기지를 확보하면서 자체적인 배터리 공급 솔루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대응해 국내 업체들은 기술력을 높여야 하고 중국이나 유럽 업체들과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급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럽의 공격적인 투자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핵심 업체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집안 싸움으로 중국, 일본 업체들만 이득을 본다는 시각도 있는 만큼 원만하게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