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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황창규 KT 회장(오른쪽부터),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이종무 기자] 내달 열리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기업 고위 임원을 증인으로 무더기 채택하는 구태가 재연될 조짐이다. 여야가 내달 2일 시작하기로 잠정 합의한 국감을 앞두고 기업인을 대거 증인으로 신청하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 "그동안 이들을 증인으로 불러 얻은 성과가 뭐냐. 시원하게 풀린 의혹이 있느냐", "국회의 정당한 국감 기능을 인정하더라도 그동안 기업인에 대한 정치권의 무차별 증인 채택은 실이 더 많다"며 매년 반복되는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22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인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은 기업 규모 1∼15위 그룹 총수를 모두 올해 국감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다. ‘농어촌 상생 협력기금’ 출연 실적이 저조한 이유를 직접 묻겠다는 이유다.
정 의원은 "지난해 대기업 사회공헌 담당 임원들이 국회에서 농어촌 상생기금 출연에 노력하겠다고 답했다"면서 "하지만 올해 들어 12억 원 밖에 모이지 않았다. (기금 모금을 위해) 더 세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어촌 상생 기금은 기부 형식이다. 강제 조항이 없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위기에 놓인 농어촌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된 기금으로, 여·야·정은 민간 기업이 FTA를 통해 얻은 이익 일부를 기부금으로 내놓는 방식으로 2017년부터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모두 1조 원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농어촌 상생 협력기금을 운영·관리하는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자료를 보면 현재까지 모금된 기금은 545억 9200만 원이다. 3년 동안 이미 절반 이상이 모금됐다. 이 가운데 민간 대기업은 43억 5100만 원을 출연했다.
현재 농해수위는 5개 대기업 사장을 이번 국감에 부르는 선에서 합의했다.
정무위원회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승계 작업 위한 회계 조작 의혹을 따져 묻겠다는 이유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 임직원을 무더기 증인으로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망 사용료 실태를 점검하고 5G 장비·서비스 등에 대한 육성 정책을 따지겠다는 취지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들도 국감 증인으로 호출할 전망이다.
환경노동위원회는 환경부 국감 증인으로 LG화학, 한화케미칼,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GS칼텍스 등 전남 여수지역 공장장을 대거 채택했다. 여수 산업단지 등에서 발생한 대기 오염물질 배출 측정 조작 관련 질의를 위해서다. 고용노동부 국감에는 건설현장 사망사고 원인 등을 따지기 위해 중흥건설 사장도 증인 명단에 올랐다.
국감 증인 채택과 출석 요구는 국회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들을 통해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던 걸 감안하면 결국 또 다시 비효율적인 국감 증인 채택 관행이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물론 잘못을 저지른 기업이 있다면 당연히 국회에 출석해 잘못을 질책 받고 또한 진실을 올바르게 증언해야 마땅하다"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국감이 진실 규명이나 기업 투명성 제고에 기여하지 못했던 만큼 많은 증인을 채택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시대가 변화한 만큼 국정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선진화된 민생 중심의 감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뜩이나 일본 수출 규제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데 최고경영자급 인사를 국회에 무더기로 불러들이는 건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는 버려지고 잊혀진 자식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잘못이 있으면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면서도 "선진국에서는 초대형 스캔들이 아니면 기업인을 국회에서 부르는 일은 거의 없다. 기업인들에 대한 무분별한 국회 증인 출석은 국가나 기업 모두에 악영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