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평균의 추구가 갖는 모순, 그리고 초미세먼지 정책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0.09 12:33

박호정 고려대학교 교수 (식품자원경제학과)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내용이다. 미국 여성의 체형을 평균으로 삼은 노르마라는 조각상을 제작한 후 이와 닮은 여성을 찾고자 노르마 대회를 열었다. 신장과 상체, 하체의 비율, 이목구비 등 통계수치를 바탕으로 가장 평균에 맞는 조각상을 제작하였지만, 이에 근접한 실제 여성은 찾을 수 없었다. 키가 약간 크거나 무게가 덜 나가거나 어떤 이유에서든지간에 노르마는 실재하지 않았다. 평균을 맹신하는 오류를 지적하는 널리 알려진 일화이지만 우리는 유사한 오류를 계속 범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나 대학의 교육현장에서도 이런 오류가 초래하는 여러 부작용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수요자로서 학생의 개성이 있으며 공급자로서 교육기관의 개성이 있겠지만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평균에 맞추다 보니 진정 창의적이고 우수한 인재가 받을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의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다.

우리나라 에너지 및 환경정책을 들여다보아도 이처럼 평균 관리에 초점을 둔 정책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초미세먼지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유연탄 화력발전소를 조기 폐쇄하고 신재생을 확대한다는 정책은 초미세먼지의 배출량 평균을 줄이는 데에는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고농도 초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에는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미세먼지가 극심한 기상조건에서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력 비중은 줄이기로 하였고 또 운영 중인 유연탄 화력발전도 발전량을 줄이기로 하였기에 이런 날에는 LNG 발전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LNG는 유연탄 보다는 친환경적이겠지만 여전히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배출되는 NOx 를 통해 초미세먼지 농도를 증대시킬 수 있다. 국민건강에 위협을 끼치는 초미세먼지는 평균 배출량을 줄이는 것보다는 초고농도의 대응능력을 제고하는데 맞춰져야 한다. 즉, 초미세먼지의 특성, 다시 말하자면 초미세먼지의 개성을 반영한 에너지 믹스 정책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배출량 평균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평균에 집착하다 보니 창의적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처럼, 평균배출량 저감에 몰입한 환경정책 역시 첨단 기술의 개발의지를 꺾을 수 있다. 일본 동경에서 차로 30 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이소고 화력발전은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다. 탈황과 탈질이 99.97%까지 이루어지는 첨단 환경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미세먼지 여론에 휩쓸린 우리나라에서는 유연탄 발전이라는 이유로 이와 같은 발전소는 더 이상 들어서기 힘들게 되었다. 여름철에는 보통 냉방수요 증대로 유연탄 발전량이 증가하지만, 지난 여름 우리는 초미세먼지 고농도를 경험하지 않은 비교적 깨끗한 대기환경을 즐겼다. 반면 냉난방 전력수요가 드문 3,4월의 봄철에는 초미세먼지 경보가 자주 발한다. 유연탄 발전이 여전한 하절기에는 초미세먼지 경보가 거의 없으며, 봄과 가을에는 유연탄 발전의 출력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미세먼지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것이 의마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가 무언가 헛짚은 것일는지 모른다. 재난급 초미세먼지 발생 시 차량 강제2부제, 학교 휴업, 마스크 무상 배부 등의 대응정책은 당연히 도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적응(adaptation) 정책이다. 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유연탄 발전소를 조기폐쇄한다는 정책기조 하에서 초미세먼지의 저감(mitigation) 정책이 과연 어떤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는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정작 초미세먼지가 우심한 시기에는 우리 스스로 그 대응능력을 제한시키는 모순에 빠지지 않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정책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모든 정책오류는 사회적 비용으로서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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