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요 둔화 장기화 전망…WTI 한달새 16.3%↓
美PMI 10년來 최저 자동차부문 실적도 부진…일각선 하회론 솔솔
사우디 줄어드는 공급도 인지해야 …러 중장기적 50달러가 합당
셰일 생산량 둔화에도 유가반등 잠잠…내년 감산정책 변화 일수도
▲(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산유국들이 최근 국제유가 하락세에도 추가 감산을 시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제유가는 지난달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원유 시설에 대한 예멘 반군의 드론(무인기) 공격으로 인해 ‘반짝’ 폭등했지만, 이후 수요둔화 우려로 인해 빠르게 안정세를 찾았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원유 수요 둔화세가 장기화되면서 ‘배럴당 50달러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PEC+(감산에 합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비(非)OPEC 산유국)은 현재 원유 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며 세간의 우려를 일축했다.
◇ 사라지지 않는 ‘원유수요 둔화’
▲지난 3개월간 WTI 가격 추이 |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0.07%(0.04달러) 하락한 52.59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12월물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배럴당 0.14%(0.08달러) 오른 58.3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와 브렌트유 가격은 사우디발(發) 공급차질 우려가 불거진 지난 9월 16일 종가대비 각각 16.4%, 15.5% 하락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 오일프라이스닷컴의 닉 커닝험 연구원은 "원유 트레이더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프리미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유가랠리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수요둔화와 이에 따른 공급과잉이 원유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 등으로 인해 글로벌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기가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최근 발표한 미국의 9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2.6으로 전월 56.4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는 지난 2016년 8월 이후 3년여 만에 최저 수준이기도 하다. 미국의 지난 9월 제조업 PMI도 47.8로 집계되면서 2009년 6월 이후 10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또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이 발표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9월 합성 PMI도 전월 확정치 51.9에서 50.1로 떨어지면서 2013년 6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합성 PMI는 서비스업과 제조업 경기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PMI는 기업의 구매 책임자들을 설문해 경기 동향을 가늠하는 지표로, 50보다 높으면 확장, 낮으면 수축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신임총재는 "글로벌 경제가 계속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안다"며 "무역 분쟁, 자본 흐름의 변동성,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전쟁,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 없어 거대한 경제 붕괴가 닥칠 수 있다"고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고했다.
원유수요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부문에서도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주요 자동차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토요타, 혼다, 닛산의 지난 9월 판매량은 전년 동기대비 각각 16.5%, 14.1%, 17.6% 감소했다. 국산 브랜드인 현대자동차도 지난달 판매량이 전년 대비 8.8% 하락했다. 블름버그는 "펠리세이드가 최근 미국에서 선보인 이후 현대차의 주력 모델로 등극됐지만 작년 9월 판매량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원유수요 증가율이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며 "원유수요가 작년 동월대비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지난 2009년 이후 처음이다"고 밝혔다.
이 은행은 "지난 10년 동안의 원유수요 추이를 돌이켜봤을 때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개월 수는 113개월인 반면 나머지 7개월은 전년 동기대비 하락했다"며 "특히 수요가 하락한 7개월 중 5개월은 올해 2월부터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보고서는 따르면 한국, 멕시코, 캐나다, 사우디,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7개국에서 최소 10만 배럴(bpd)규모의 원유 수요가 하락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앞으로 원유수요 전망치를 추가로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비롤 총장은 "글로벌 경기는 확실한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다. 원유 최대 수요국인 중국은 30년이래 최저 수준의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고 기타 선진국가들의 경제상황도 만만치 않다"며 "향후 며칠 또는 몇 달 이내 원유수요 전망치를 하향조정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CNBC, 블룸버그 등의 외신에 따르면 IEA는 현재 올해와 내년에 대한 글로벌 원유수요 전망치를 각각 110만 배럴(bpd), 130만 배럴로 보고 있다.
◇수요둔화 확실해도 OPEC+ "수요공급 균형 갖췄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사진=AP/연합) |
이렇듯 글로벌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인해 원유 수요가 한층 더 위축되면서 국제유가가 추가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공급 조절의 ‘키’를 쥐고 있는 산유국들은 향후 추가 감산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최근 블룸버그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에너지 위크 컨퍼런스’에 참석중인 알렉산더 노박 장관은 "글로벌 경제에 따라 원유수요가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며 실제 현재 경제상태는 좋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비상 회의를 소집할 만큼 (경제가) 심각한 수준에 처한 상황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장관도 "경제침체를 야기시키는 요인들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글로벌 경제 전망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정들이 너무 비관적이다"고 말했다. 즉 OPEC+의 주요 인사들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유가 하락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OPEC+ 장관 사이에서(추가 감산 등)전략변화에 대한 신호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있는 반면 실제처럼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감이 먼저 존재해야 움직인다"며 "수요가 갈수록 둔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급 또한 축소되고 있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박 장관도 "현재 원유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며 "우리는 현재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고, 혹시라도 원유 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도 이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노박 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배럴당 100달러 시대는 잊었다. 우리는 중장기적으로 배럴당 50달러가 합당하다고 본다"며 "올해 러시아 정부 예산도 국제유가를 배럴당 43~45달러를 기준으로 책정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발언은 미국 셰일오일의 생산량이 예전만큼 폭발적이지 않기 때문에 미국발 공급량이 줄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6월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1208만 2000배럴로 1년 전 대비 143만 배럴 증가했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증가 폭이 전년 동기 대비 최고 210만 배럴까지 치솟았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증가 폭이 다소 둔화됐다. 미국의 작년 8월 원유 생산량은 1136만 1000배럴, 12월 1203만 8000배럴을 기록했다. 이는 2017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11만 3000배럴, 206만 5000 배럴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7월까지의 미국 원유생산량은 1년 전 대비 증가 폭이 200만 배럴선을 하회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의 존 켐프 애널리스트는 "고유가로 인한 미 셰일의 증산촉진과 글로벌 원유 수요둔화로 인해 미국의 2차 셰일가스 붐이 끝을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커닝험 연구원은 "다만 셰일가스의 생산량 둔화에도 유가는 아직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유가가 추가로 하락할 경우 OPEC+는 감산정책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OPEC+는 지난해 11월 산유량을 하루 120만 배럴 감산하기로 합의하고 올해 1월부터 내년 3월까지 이를 이행하기로 했다. 산유국들은 내년 3월께 원유 수급 상황을 고려해 감산 규모를 늘리거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같은 컨퍼런스에 참석한 나이지리아 팀프레 실바 석유장관은 "2020년 원유수요 전망은 어두워보인다"며 "OPEC+는 12월 감산정책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