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와 바클리 영국 브렉시트부 장관 (사진=AP/연합)



영국의 질서 있는 유럽연합(EU) 탈퇴를 위한 브렉시트(Brexit)를 둘러싸고 양측이 초안 합의를 이루게 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국 증시에 이어 영국 파운드화 가치도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영국과 EU간의 합의안이 나오더라도 영국 의회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브렉시트 합의의 핵심 쟁점은 ‘안전장치’(백스톱)에 대한 대안이다. 안전장치는 EU 탈퇴 이후에도 영국을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조치로,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국경에서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하드 보더’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 위해 테레사 메이 전 총리가 EU와 합의한 조항이다. 그러나 존슨 총리는 영국이 EU에 무기한 종속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조항을 강력히 반발해 EU에 안전장치 폐기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EU는 안전장치 조항 삭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존슨 총리는 안전장치의 대안으로 ‘4년간 두 개의 국경’을 뼈대로 하는 대안을 이달 2일 EU에 제시했다. 2020년 말까지인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종료 후에 북아일랜드는 영국 본토와 함께 EU 관세동맹에서는 탈퇴하되, 2025년까지 농식품 및 상품과 관련해서는 EU 단일시장의 규제를 적용받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신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및 의회에 거부권을 부여, EU 규제를 계속 적용할지 여부를 4년마다 결정하도록 했다.

EU는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계속 EU 관세동맹에 남아야 하며, EU 단일시장의 규제를 계속 적용받을지에 대한 거부권을 주는 방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처럼 EU가 수용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서 존슨 총리는 다시 북아일랜드에 ‘두 개의 관세체계’를 동시에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정안을 최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북아일랜드는 법적으로는 영국의 관세체계를 적용하되 실질적으로는 EU 관세동맹 안에 남는 것이다.

이 경우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향하는 상품은 아일랜드해에서 규제 및 세관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자유롭게 아일랜드로 넘어갈 수 있다. 영국과 EU는 북아일랜드 항구 등에서 EU 관세율을 적용해 관세를 징수한 뒤 이를 추후 EU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북아일랜드는 법적으로는 영국 관세체계를 따르기 때문에 영국이 향후 제3국과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FTA)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다.


◇ EU 정상회의 앞두고 "큰 틀 합의…초안 16일 공개될 수도"

브렉시트(사진=AP/연합)


이와 관련, 일간 가디언은 아일랜드 국경과 관련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중대한 양보를 통해 브렉시트 합의 직전에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디언은 영국과 EU 양측 취재원을 인용, "양측이 아일랜드해에 관세 국경을 세우는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영국 정부가 최종 ‘그린 라이트’를 줄 경우 합의안 초안이 16일(현지시간)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초안 합의에 가까워졌다며 16일(현지시간) 오전에 합의가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아직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막판에 정치적 또는 기술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WSJ는 덧붙였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EU 관계자들을 인용, 16일 자정 이후까지 논의가 이어질 수 있지만 브렉시트 관련 법문서가 거의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AP통신은 한 독일 유럽의회 의원을 인용해 "양측 협상팀이 돌파구를 마련해 브렉시트 합의가 이제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있다면서 "이제 우리는 북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를 보호할 법적 기반을 만들고, (브렉시트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공영 BBC 방송은 총리실이 이같은 합의 관측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총리실 대변인은 "협상이 매우 건설적이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브렉시트 합의안 초안이 마련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6일 보고서에서 "영국이 EU과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EU를 탈퇴하는 최악의 상황인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이 낮아진 점은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원은 "최근 브렉시트 협상이 진행됐던 이유는 영국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하드보더(엄격한 통행·통관 절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영향"이라고 해석했다.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면 오는 17∼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추인을 받을 예정이다. 바르니에 수석대표는 16일 오후(현지시간) EU 대사들에게 브렉시트 협상과 관련한 브리핑을 할 예정이다. 이후 존슨 영국 총리는 토요일인 19일 하원을 열고 합의안 승인을 시도할 계획이다.

존슨 총리는 북아일랜드가 법적으로는 여전히 영국의 관세 체계 안에 남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연합당(DUP)와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있다.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 모임인 ‘유럽연구단체’(ERG)의 수장인 스티브 베이커 의원은 "내가 찬성할 수 있는 수용 가능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 낙관적이다"라고 말했다. 베이커 의원은 ‘존슨 총리를 신뢰하고 있다’고 동료 유럽회의론자 의원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이 EU 정상회의 때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영국 의회를 통과한 유럽연합(탈퇴)법, 이른바 ‘벤 액트’에 따라 브렉시트를 3개월 추가 연기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앞서 영국 의회는 EU 정상회의 다음 날인 오는 19일까지 정부가 EU와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존슨 총리가 EU 집행위원회에 브렉시트를 2020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EU가 브렉시트 직전인 오는 27일 내지 28일 추가로 브렉시트 특별 정상회의를 열어 그때까지 브렉시트 합의를 시도하거나, 브렉시트 연기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 연구원도 "여전히 낙관하기는 이르다"며 "합의문 초안이 작성돼도 EU 의회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 등은 아일랜드섬의 국경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스탠스를 시사했고 아일랜드 총리도 합의에 있어 불확실성이 여전하다고 언급했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또한 EU의 만장일치를 받더라도 영국 의회에서 가결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며 "이 경우 노딜 방지법에 따라 영국은 브렉시트 일정 연기를 신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 총리는 합의 여부를 떠나 예정대로 이달 31일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RBC캐피탈 마켓의 피터 샤프릭 글로벌 매크로 전략가는 "EU의회에서 동의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해당 사안이 완전히 종료되는 건 아니다"며 "EU와 영국간의 합의가 마련되어야 할 실제 기한은 영국의 예정된 EU 탈퇴일인 10월 31일이다"고 보도했다. 존슨 총리가 31일 영국을 떠난다는 자세를 유지하는 만큼 EU 정상회의 이후에도 브렉시트 합의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해석이다.


◇ 브렉시트 합의 기대감에 탄력받는 금융시장

이렇듯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브렉시트 합의에 대한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 주요국 증시는 협상 타결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DAX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15% 상승한 12,629.79로 마감했다. 프랑스 파리의 CAC 40 지수는 1.05% 오른 5,702.05로 장을 마쳤고, 범유럽지수인 유로 Stoxx 50 지수 역시 3,598.65로 전 거래일 대비 1.19% 상승했다. 다만, 영국 런던 FTSE 100은 1.81% 하락한 7,211.64로 마감했다. 영국의 경우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협상 타결 여부와 관계없이 브렉시트에 따른 경제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도 급등했다. 15일 외환시장에서 달러·파운드 환율은 1.45% 상승한 1.2788달러를 기록했다. 유로·파운드 환율도 1.24% 뛴 1.1579 유로를 기록했다. 마켓닷컴의 닐 윌슨 애널리스트는 "브렉시트 막판 합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달러대비 파운드 가치가 최근 4개월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브렉시트 합의 기대감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탄력받는 배경에는 ‘노 딜’ 브렉시트가 경제성장 둔화를 야기시키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 싱크탱크 재정연구협회(IFS)는 보고서를 통해 이달 초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 국가부채가 1960년대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존슨 IFS 협회장은 "노딜 브렉시트가 일어나면, 정부의 일시적이고 정확한 목적의 지출 증대가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결국에 노딜 브렉시트 이후 2년간 영국 경제는 바닥을 기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브렉시트 이후 증가할 공공서비스 지출 압박이 부채를 더할 것이란 분석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노 딜 브렉시트는 부담으로 적용된다. 영국은 EU에서 두 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며 지난해 양국 간 교역규모는 131억7000만달러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2018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의 GDP가 주요국 중 가장 큰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노딜 브렉시트 발생 시 한국의 실질 GDP는 오는 2033년까지 누적으로 3.1%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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