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 돋보기-上] DLF 사태로 드러난 펀드시장 민낯...銀-운용사 간 입장 어떻길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0.16 14:42

당국, DLF 'OEM 펀드' 여부 조사...은행 관여여부 관건
은행권, 펀드 판매 주요 창구...추천 상품따라 운용사 희비
운용사 상품 추천 은행권 난색...후행적 판매에 투자자 '눈물'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에 이어 라임자산운용 헤지펀드마저 환매가 중단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이번 사태의 뿌리에는 자본시장통합법과 관치금융, 관피아 등이 자리잡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3회에 걸쳐 DLF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 해외 사례 등을 집중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DLF 사태로 드러난 펀드시장의 민낯...은행-운용사 간 입장 어떻길래

[中] 은행권 ‘광범위한 영업망’이 사태 키웠다...‘기울어진 운동장’ 주목

[下] '금융사 봐주고 어르고...' 뿌리깊은 관치금융, 소비자 보호는 어디에

▲(사진=연합)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의 'OEM 펀드' 여부를 놓고 금융당국이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가운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펀드시장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펀드 판매의 주도권을 은행, 증권사 등이 쥐고 있는 탓에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가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데다 판매사들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후행적인‘ 성격이 짙어 이미 투자자들이 펀드에 가입했을 때는 기초자산이 고점을 찍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을 넘어 운용사들이 뚜렷한 운용 철학을 갖고 투자자들, 금융사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들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 금감원, DLF 'OEM 펀드 여부' 집중 조사...의사결정 비중 관건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현재 판매사, 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DLF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펀드에 해당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OEM펀드는 판매사가 운용사한테 일방적으로 지시해 만들어진 펀드를 의미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자산운용사 등 집합투자업자는 펀드의 운용 지시 업무를 위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OEM 펀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은행이 해당 펀드를 설정하자고 제안한 건 맞지만, 자산운용사 역시 적극적으로 상품 설계 논의에 참여한 만큼 일방적인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당국은 운용사가 펀드 설계 과정에서 얼만큼의 의사결정을 했는지를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만일 은행이 운용사에 파생결합상품(DLS)을 묶어 펀드로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운용사가 수동적으로 이에 응했다면 최근 논란이 된 DLF는 OEM 펀드로 보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대규모 손실 사태를 불러일으킨 DLF를 OEM 펀드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OEM 펀드라고 하면 금융사가 펀드 설정부터 포트폴리오 조정 등 전 과정을 개입해야 하고, 이런 행위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또 운용사, 판매사 가운데 책임 여부에 따라 과태료 등 처벌 수위도 다르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한 전문가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결과는 좀 더 봐야하나, 지금까지 정황만 봤을 때 은행은 DLF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만 조금 관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OEM 펀드 정황들을 보면 펀드 운용의 갑과 을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줄 만한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제재를 못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광범위한 영업망 보유' 펀드 판매-운용 간 구조적 한계

업계에서는 DLF 사태로 인해 펀드 판매에 있어서 은행권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점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동향과 기업들 펀더멘털, 향후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펀드를 설정하고 운용하는 ‘운용사’와 고객들 성향과 시장에 따라 적기에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사‘ 간의 관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특정 한 부분으로 쏠려있다는 사실은 업계는 물론 당국 역시도 인지하고 있는 사안이다. 은행은 국내 금융사 가운데 가장 넓은 영업망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이 어떤 상품을 판매하느냐에 따라 운용사들 간의 희비도 엇갈릴 수 밖에 없다. 운용사들이 우수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펀드를 설계하더라도 은행 등 판매사가 해당 상품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투자자들에게 권유하지 못할 경우 빛을 보지 못하고 뒤안길로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투자자들 '고점' 펀드 투자 이유 있었다...운용-판매사간 불신


또 운용사들이 기초자산의 가격이 상승, 혹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에 맞는 펀드를 판매사에 추천한다고 해도 금융사들이 펀드 판매에 난색을 표하는 사례도 있다. 판매사가 운용사의 조언을 믿지 못하다가 향후 기초자산이 고점을 찍었을 때 고객들에게 상품을 권유하는 경우가 있다는 의미다. 자산이 고점일 때 들어간 투자자는 당연히 수익을 얻을 확률보다 손실을 볼 확률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다만 이 부분은 단순 ‘은행’만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권유해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도 아직 수익률이 검증되지 않은 상품을 ‘운용사’ 말만 믿고 판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펀드 마케팅을 담당하는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은 "브릭스 펀드, 차이나 펀드 등 과거 잘 나갔던 펀드들을 보면 운용사가 미는 시점과 판매사가 파는 시점은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차이가 난다"며 "1년 전에 투자했으면 지금쯤 상당한 수익을 올렸을텐데, 판매사들이 운용사들의 분석을 믿지 않고 안전상품 위주로 판매하다가 애꿎은 투자자들만 고점에 들어가 낭패를 볼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 수수료 체계 개편, 온라인 펀드 판매 채널 활성화 등 관건

금융권 전문가들은 이같은 비대칭 관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수수료 체계 개편 등 제도 개선 뿐만 아니라 각 업권 간의 역할을 존중하도록 인식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비대칭 관계는 엄밀히 말하면 판매사, 운용사 등 어느 한 쪽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이나 미국 등 자본시장 선진국은 투자자들이 자문인, 즉 어드바이저를 통해 펀드를 가입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또 선취판매수수료보다는 성과연동형수수료 비중이 크기 때문에 판매사들 역시 보다 책임감을 갖고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펀드를 권유한다. 투자자들이 판매사를 거치지 않고 온라인에서 펀드를 직접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제3자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투자자가 본인의 투자 성향에 맞게 보다 책임있는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운용사들 역시 확고한 운용 철학을 바탕으로 회사 규모를 키우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금융지주사 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산운용사들이 몸집을 불리는 방식으로 규모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며 "운용사들이 판매사들의 전략과 맞지 않다면, 과감하게 해당 판매사에는 상품을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행위도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제도 개선 만으로 이같은 관행을 바로 잡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운용사는 판매망이 없기 때문에 판매사가 시키는 대로 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운용사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며 "판매사가 운용사에 OEM 펀드를 만들자고 권유하거나 운용사가 이에 응하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업권에서 자정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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