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 돋보기-中] '기울어진 운동장'이 사태 키웠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0.18 10:32

사모펀드 순기능 도외시, 당국 규제 강화시 시장 위축 우려

전국 지점 많고 고객 접점도 多...위험상품 판매 휘발성 키워

"은행 상품도 위험할 수 있다"...투자자들 잘못된 인식 개선해야

증권사, 은행과 공정 경쟁 불가능...‘초대형 IB’ 등 대형화 시급

▲(사진=연합)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에 이어 라임자산운용 헤지펀드마저 환매가 중단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이번 사태의 뿌리에는 자본시장통합법과 관치금융, 관피아 등이 자리잡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3회에 걸쳐 DLF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 해외 사례 등을 집중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DLF 사태로 드러난 펀드시장의 민낯...은행-운용사 간 입장 어떻길래

[中] 은행권 ‘광범위한 영업망’이 사태 키웠다...‘기울어진 운동장’ 주목

[下] ‘금융사 봐주고 어르고...’ 뿌리깊은 관치금융, 소비자 보호는 어디에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에 이어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도 환매 중단을 선언하면서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 국내 사모펀드 시장에 잇따라 사건, 사고가 터지면서 당국이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사태의 주요 원인은 광범위한 영업망을 보유한 은행이 리스크 관리에 무방비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했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모펀드를 규제하기보다는 금융권에서 투자자 적합성 등을 보다 세밀하게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투자자 역시 은행에서도 ‘위험자산’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평가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 변화는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은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당시만 해도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모펀드 제도의 허점이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강조하며 기존의 입장에 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는 최근 DLF 대규모 손실,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등 사모펀드 시장에 사건, 사고가 잇따라 터졌기 때문이다. 2015년 규제를 완화한 이후 사모펀드 시장이 고속으로 성장하면서 사모펀드에 대한 실태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이에 따른 소비자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도외시되고 당국이 규제를 강화하면서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DLF 대규모 손실 사태의 핵심은 ‘사모펀드’ 상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투자자들의 인식과 은행권의 광범위한 영업망 등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은행이 사모펀드 같은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본시장법상 은행 역시 안전자산(예금형)부터 위험상품까지 모든 상품을 취급할 수 있다. 같은 상품을 증권사에서 가입했다고 해도 결과는 유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DLF에 가입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은행이 국내 금융사 가운데 가장 넓은 영업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증권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에 광범위한 지점을 갖고 있기에 고객 접점도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은행에서 파는 모든 상품은 ‘안전’하고 증권사에서 취급하는 상품은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은행에서 파는 상품을 별다른 의심이나 확인없이 무조건 믿고 가입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은행의 광범위한 영업망이 사태의 휘발성을 더욱 키운 것이다"며 "또 고객들은 증권사에서 취급하는 상품에 대해 어느 정도 리스크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상품을 가입하더라도 고객들의 반응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라이터에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라이터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것과 똑같다"며 "위험상품을 판매하는 직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은행과 증권사 간의 판매 채널 역할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계기로 은행, 증권사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표면적으로 봤을때는 은행과 증권사가 동등한 위치에서 공정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증권사들의 규모는 은행에 비해 한참 뒤쳐진다. 실제 국내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 8조3524억원으로 국내 1위 은행인 신한은행(24조1924억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은행은 증권업에 비해 역사가 긴데다 과거 대한민국이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은행업도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초대형 투자은행(IB) 활성화 방안 등 기존에 나온 증권사 경쟁력 방안을 보다 신속하게 추진해 자본시장 내 ‘모험자본’을 대표하는 증권사와 은행업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은 자본력부터 시작해서 이미 거의 모든 요소에서 증권사들을 압도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은행과 증권사 간의 판매 경쟁은 사실상 증권사들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황 위원은 "DLF 사태를 계기로 은행권을 대상으로 리스크가 큰 상품들에 대해서는 일부 판매를 제한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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