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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정상회의(사진=AP/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합의안이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A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과 EU는 17일(현지시간) 벨기에에서 시작되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벌인 막판 협상에서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불과 몇시간 전에 합의안 초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도 이 합의안 초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브렉시트 합의에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안전장치’를 두고 EU와 영국은 북아일랜드에 ‘두 개의 관세체계’를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브렉시트 합의안 초안에 합의했다. 북아일랜드에 대해 법적으로는 영국의 관세체계를 적용하되 실질적으로는 EU 관세·규제체계 안에 남기는 것이다.
북아일랜드는 EU의 상품규제를 따르게 되며, 동시에 영국 관세체계에 남되 EU 유입 우려가 있는 상품은 EU 관세율을 적용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또 이같은 협정을 시행한 지 4년이 지나면 북아일랜드 의회가 계속 적용 여부를 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과반이 찬성하면 협정을 계속 적용하게 된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 정상들이 "브렉시트 합의에 대한 논의를 마쳤다"면서 "EU 정상회의는 이번 합의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합의는 단일시장의 통합성을 보장하고 EU 시민들에게도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면서 또 "우리가 혼돈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남은 과제는 영국 의회의 승인 절차만 남게됐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오는 19일 영국 의회에서 승인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하원은 토요일인 오는 19일 특별 개회일을 갖고 합의안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다. 만약 양측 비준을 모두 거친다면 영국은 예정대로 31일 23시(그리니치표준시·GMT) EU를 떠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3년 4개월 만에 EU 탈퇴를 마무리 짓게 된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이날 "의지가 있는 곳에 합의가 있다"면서 "우리는 합의를 이뤄냈다. 그것은 EU와 영국을 위해 공정하고 균형 잡힌 것"이라며 합의 사실을 발표했다.
◇ ‘노 딜’ 피했지만 英의회 비준이 남은 과제…‘난항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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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사진=AP/연합) |
문제는 영국 의회 비준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돼 브렉시트에 대한 최종 결과가 아직은 미지수라는 점이다. 영국은 지난해 제정한 EU 탈퇴법에서 의회의 통제권 강화를 위해 비준동의 이전에 정부가 EU와의 협상 결과에 대해 하원 승인투표(meaningful vote)를 거치도록 했다. 합의안은 승인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어야 통과한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총리가 지난해 11월 EU와 합의를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원 승인투표에서 부결의 쓴 맛을 봤던 점을 고려하면 존슨 총리도 또다시 영국 하원의 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영국 하원의 총 의석은 650석이다. 집권 보수당이 하원의장을 포함해 289석, 제1야당인 노동당이 244석이다. 이어 스코틀랜드국민당(SNP) 35석, 자유민주당 19석, 민주연합당(DUP) 10석, 신페인 7석, ‘변화를 위한 인디펜던트 그룹’(The Independent Group for Change) 5석, 웨일스민족당 4석, 녹색당 1석, 무소속 36석 등이다.
이중 하원의장(보수당)과 3명의 부의장(보수당 1명, 노동당 2명),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정당인 신페인당 의원 7명 등 11명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합의안 통과를 위해서는 이들을 제외한 639명 중 과반인 320명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문제는 보수당 단독으로는 320석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심지어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온 DUP는 이미 존슨 총리의 합의안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메이 전 총리가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 그룹 역시 DUP가 지지하지 않는 합의안에 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설령 보수당 의원 전원, 지난달 초 당론에 반해 투표했다는 이유로 출당됐던 21명의 보수당 출신 무소속 의원이 모두 존슨 총리의 합의안에 찬성하더라도 여전히 과반에 못 미친다.
결국 합의안이 승인투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노동당 의원이 대거 찬성표를 던져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EU 탈퇴 지지율이 높은 선거구를 둔 노동당 의원 일부가 당론을 어기고 존슨 총리 합의안에 찬성하더라도 320표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변수는 존재한다. 우선 존슨 총리가 각종 당근을 내세워 토요일 승인투표 때까지 DUP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또 EU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추가 연기는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경우 브렉시트 합의안이 영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오는 31일 ‘노 딜’(no deal) 브렉시트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영국 하원은 양자택일의 선택에 몰리게 된다. 존슨 총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는 31일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융커 EU 상임위원장은 앞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도 논의했다며 "연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투스크 EU 집행위원회 상임의장도 EU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추가 연기 가능성에 대해 "연기 요청이 있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회원국들과 상의해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영국 의회의 합의안 승인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반대로 영국 의회가 승인투표를 또다시 부결할 경우 브렉시트를 추가 연기하겠다고 EU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선제적으로 발표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이는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을 존슨 총리의 합의안 지지 쪽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이외에도 존슨 총리가 사임한 뒤 조기 총선을 추진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브렉시트 합의에 성공했지만 의회가 이를 가로막았다’는 점을 내세워 존슨 총리가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기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하면 존슨 총리는 추후 승인투표에서 안정적으로 브렉시트 합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