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 돋보기-下] "금융사 봐주고 어르고" 뿌리깊은 관치금융, 소비자 보호는 어디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0.21 08:01

카드사 정보유출 사고 등 각종 금융사고 ‘솜방방이’ 처벌 그쳐
‘직무 수행 능력’ 보다는 정권 입맛 중시...낙하산 인사 되풀이
소비자 보호 뒷전, ‘자리 챙기기’ 급급...DLF 사태 재발 우려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에 이어 라임자산운용 헤지펀드마저 환매가 중단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이번 사태의 뿌리에는 자본시장통합법과 관치금융, 관피아 등이 자리잡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3회에 걸쳐 DLF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 해외 사례 등을 집중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DLF 사태로 드러난 펀드시장의 민낯...은행-운용사 간 입장 어떻길래

[中] 은행권 ‘광범위한 영업망’이 사태 키웠다...‘기울어진 운동장’ 주목

[下] ‘금융사 봐주고 어르고...’ 뿌리깊은 관치금융, 소비자 보호는 어디에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글로벌 자본시장에는 최근 발생한 DLF 사태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금융사를 신뢰했다가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국내외 자본시장법은 수많은 투자자들의 피와 눈물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미 발생한 금융사고가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법을 강화하는 작업들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자본시장법 역시 더욱 방대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성장하기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이 ‘금융소비자 보호’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작 보호를 받는 소비자들 입장에서 우리나라 당국이 정말 소비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사고의 재발을 막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금융권에는 엄격한 칼날을 겨눠야 하는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보다는 ‘금융권 보호’에 집중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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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심재오KB국민카드 사장(오른쪽부터),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손경익 NH농협카드 부사장이 3사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사과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


◇ "내 정보는 어디에" 2014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 재조명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4년 발생한 카드 3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최근 5년간 대한민국 자본시장에 벌어진 금융사고 가운데 가장 파장이 컸던 건이다. 당시 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 등 3사에서 고객 이름, 주민등록번호, 카드번호, 유효기간 등 20여종의 정보 1억400만건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용정보회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직원이 카드사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보안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은 개인용 컴퓨터(PC)로 개인정보를 빼돌리다가 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그럼에도 카드사들은 오히려 고객들에게 "사기성 전화와 문자에 현혹되지 말아라", "2차 유출은 없다" 등의 근거없는 말로 고객들을 안심시키기에만 급급했다. 자신의 정보가 어디까지 유출됐고, 어디서 쓰이고 있는지, 안심하고 해당 금융사를 이용해도 되는건지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국의 처벌 역시 ‘솜방방이’에 가까웠다. 당시 해당 카드사들이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징계는 2014년 2월부터 3개월간 신규 고객모집 금지, 카드론 영업정지, 대표이사 등 임직원 직무 정지, 해임 건고 등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과태료 역시 600만원대에 그쳤다. 금융소비자의 개인정보 1억400건에 상응하는 과태료가 고작 600만원이었던 것이다.


◇ 수출입은행장에 ‘청와대 인사’ 유력...낙하산 인사 반복

이렇듯 금융당국이 금융사를 엄격하게 처벌하지 못하는 것은 뿌리깊은 ‘관치금융’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금융당국 인사들이 거래소, 예탁결제원을 비롯해 각종 금융사 주요 보직을 장악하고, 금융당국이 금융권 인사와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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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노동조합이 1층 서울사옥에서 낙하산 인사 반대 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윤하늘 기자)

실제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은 시장본부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새로운 인물이 선임될 때마다 매번 낙하산 인사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거래소는 이달 15일 정기이사회를 열고 조효제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와 임재준 현 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을 각각 파생상품시장본부장, 유가증권시장본부장 후보로 추천했다. 거래소는 오는 3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두 후보군을 최종 선임할 예정이다. 거래소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노조 측은 "금감원 부원장보에서 사실상 해임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인사가 거래소 파생본부장 적임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며 "주주총회 전 은성수 금융위원장, 최종구 전 금융우원장을 직권 남용으로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기 수출입은행장에도 낙하산 인사가 내려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차기 수출입은행장 자리에는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사실상 낙점된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고시 27회 출신인 윤 전 수석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 전문성 없고 ‘출신’에만 주목...제2 DLF 사태 시간문제


이를 두고 금융권 종사자들은 전문성과 직무 수행 능력 등은 제쳐두고 매년 정권에 맞는 인물을 금융권 주요 보직으로 내려보내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 한 '제2의 DLF 대규모 손실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금융권을 ‘퇴임 후 제2의 일자리’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금융권에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오히려 반대로 잘못이 있어도 눈감아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자본시장 경쟁력 역시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 쪽 인사들이 주요 금융권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금융당국 역시 금융기관에 막강한 ‘칼날’을 들이대기가 어렵다"며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 줄섰던 수장들을 해임하고, 입맛이 맞춘 인물들을 뽑는 사태가 반복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 산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 중 하나인 만큼 정부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만일 정부가 금융 산업에 ‘당근’만 제공한다면 이것이 또 다른 금융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감안해도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관치금융’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지나치고 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는 "이미 자본시장에 깊게 자리잡은 관치금융을 금융권 스스로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국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치금융의 폐해에 대해 지적하고 개선하라고 압력을 넣는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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