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무의 눈] 인사 담당자여 '82년생 김지영'을 보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1.10 13:22

산업부 이종무 기자


기업 인사 시즌이다. 기업별로 내년 초까지 이어지는 정기 인사에서 승진 명단에 이름에 올린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희비가 엇갈린다. 언론에게도 어떤 인사가 임명되고 승진했는지는 중요하다. 인사 성격을 분석하며 향후 해당 기업 경영 방향의 큰 틀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임원의 승진과 그 비율이 주요 기사를 이룬다.

최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관람했다. 영화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시간 남짓한 영화에는 우리 시대 어머니, 누나, 아내들의 팍팍한 삶이 영상 속 장면처럼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남녀 평등’에 대한 고질적인 우리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남성들의 의식 수준을 되돌아보게 했다.

실제 한국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올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놓은 ‘유리천장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국가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를 보더라도 지난 8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 748만 1000명 중 여성은 412만 5000명(55.1%)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특히 시간제 근로자의 경우 전체 315만 6000명 중 여성이 231만 명으로 73%에 달했다.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중 절반·대부분이 여성인 셈이다. 이로 인해 남녀 임금 격차는 37%, 고용률도 20%포인트나 차이 난다.

이는 유리천장,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로 여성들이 다시 취업 시장에 편입되지 못한 구조적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전한 기업의 남성중심적 사고, 인식 수준이 잉태했을 개연성이 높다. 영화에서도 남성 임원은 여성 임원에게 "엄마가 일을 하면 애가 어디라도 잘못된다"고 거침 없이 내뱉는 장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물론 많은 기업과 남성이 성 평등을 실천하려 애쓰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었는데 아직 사회 인식이나 인프라가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균형 회복이 필요하다. 마이클 코프먼 정치학 박사도 저서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에서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남성들은 일단 귀를 열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기업, 그 인사 담당자들이라면 영화관에 한 번 가보기 바란다. 그리고 미래에는 ‘여성 임원 승진’이 ‘이례적’이라거나 ‘파격’이라는 언론 기사가 오르내리지 않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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