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발목 잡힌 사용후핵연료 어디로 가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1.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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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 위원회는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과정에서 공론화 위원이 사퇴하는 등 지역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정당성이 훼손됨에 따라 재공론화를 위해 지난 5월 29일 출범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말이 많았다. 재공론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를 배제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5월부터 6개월 동안 진행한 재검토위준비단은 정책건의서에서 지역의견 수렴범위와 위원회 구성방안에 대해 단일안으로 다수의견을 도출했다.

어찌 보면 재공론화 위원에 이해관계자를 배제시킨 것은 이러한 복잡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해당사자 참여는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중립위원으로 구성한다는 명분으로 이해당사자를 배제시킨 것은 일면 일사불란하게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사결정과정에 대중의 참여항목은 1998년 제네바에서 합의한 지역 오르후스 협약에도 명확하게 나와 있다. 재공론화 자체를 거부해 참여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하물며 참여의사를 가진 것은 환영할 일이며 참여 형식과 무관하게 배제시킬 이유도 명분도 없다. 실제 이해관계자들이 최종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필수적인 공론화 과정의 하나이다. 

우리는 경주방폐장 건설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바 있다. 1984년 10월 원자력위원회는 폐기물관리 기본원칙을 발표한 뒤 폐기물 처분장을 추진하였지만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안면도, 굴업도, 위도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으로 많은 희생이 따랐다. 최종적으로 4개 후보지를 발표했지만 결국 다른 지역인 경주가 선정됐다. 이로 말미암아경주에는 양성자가속기가 유치되고 한수원 본사가 이전되고 수천억원에 해당하는 지역지원금 지급됐다. 

하지만 이 지역은 지질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최근 활성화된 활성단층과 지진의 발생으로 지진 안전성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소통부재의 졸속 부지선정과정은 현재 추진되는 고준위방폐장 건설에서 반드시 재발돼서는 안된다.

사용후핵연료와 같이 장기간 보관돼야 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의 경우 해당 지역과 정부 간에 기본적인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시적인 묘책으로 어떻게 해결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금방 발목 잡히고 신뢰만 망가지게 된다. 정부는 경주방폐장 건설을 위해 지역에 후속적인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은 설치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건식저장 부지가 만재된 지금, 저장용량을 확장해야 하는 정부입장은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관심을 가진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인가? 2016년 7월 한국을 방문한 TUV Nord 피터슨 사장은 "사용후핵연료의 이송과 보관에 있어 주민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서 스스로 안전에 확신이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금광산을 정하고 장기저장을 위한 대규모 공사까지 마쳤으나 부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소통방식의 문제 제기로 인해 2013년부터 부지선정을 위한 공개적인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고 언급했다. 스웨덴의 엔즈스트롬 SKB 부사장은 2013년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 "부지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10여 년간 2만 지역주민을 찾아서 1만번이 넘는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국내의 경주와 독일, 스웨덴의 부지 선정과정에서 시사하는 공통점은 바로 소통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그 소통작업은 다수결이나 단순 갈등을 관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신뢰를 확인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관료의 권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어떤 것도 해결과 거리가 먼 모습이다. 또한 우리가 그 동안 진정한 소통을 위해 돈 쓰는 일 외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자성해야 한다. 일정을 수립하고 건설공사처럼 밀어붙이는 전근대식 개발형 추진방식은 신뢰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위험한 방식이며, 오히려 분란만 초래할 것으로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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