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지소미아 연장-美방위비 협상은 ‘깜깜’...文대통령, 한미일 외교 해법찾기 ‘고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1.23 10:22

美 "지소미아 갱신 환영"..."한미동맹 이득될 현명한 결정 내렸다"

난제 산적 속 연내 한일정상회담 가능성...한일외교장관 회담 주목

"한국은 부자나라" 미국,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계속

주요 외신 "미국, 터무니없는 요구...한국 갈취하는 것과 같다"

▲(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해 사실상 ‘조건부 연기’ 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그간 경색 국면을 이어온 한일 관계에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다만 미국의 경우 우리 측의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표하면서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물러설 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고심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美 "지소미아 갱신 결정 환영"...‘안보이익 침해 말라’ 간접 경고


미국 의회는 22일(현지시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건부 연기 결정과 관련해 "환영한다"고 밝히면서도 미국의 안보이익과 관련해 다소 ‘뼈’ 있는 메시지를 내놨다.

밥 메넨데스 미국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는 2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훌륭한 소식"이라며 "상원이 우리의 동맹을 지키기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지 몇시간 안 돼 한국이 매우 중요한 정보 공유 협정을 종료하려던 결정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은 우리의 동맹과 양국 간 협력에 이득이 될 현명하고 판단력 있는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올해 8월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리자 한국을 정면으로 겨냥해 지소미아 복원을 압박했다. 한일 갈등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를 둘러싼 한일 간 논란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일단 지소미아 문제만큼은 한국이 미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했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앞서 미 상원은 지난 20일 제임스 리시(공화) 외교위원장과 제임스 인호프(공화) 군사위원장, 외교위 민주당 간사인 메넨데스 의원과 군사위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 의원 등의 주도로 ‘지소미아 연장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으며, 이 결의안은 상정 바로 다음 날인 21일 소관 상임위인 외교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종료 시 미 의회 내에서도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예상 외로 완강한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은 일본을 향한 압박에도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은 지난달 말부터 잇따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2~23일 일본 나고야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를 사흘이나 앞둔 19일 도쿄를 찾아 역할 모색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한미, 한일, 미일 간 각급 단위에서 타협점을 모색하는 줄다리기가 막판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도 일단 급한 불을 껐다고 평가하며 안도했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한일 갈등 때문에 미국의 안보이익과 직결된 지소미아까지 건드렸다는 불신은 향후 한미 관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 국무부는 이날 연합뉴스의 논평 요청에 대해 "한일이 역사적 사안들에 지속성 있는 해결책을 보장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이어갈 것을 권고한다"면서 "미국은 한일관계의 다른 영역으로부터 국방 및 안보 사안이 계속 분리돼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일이 갈등 해결을 위해 적극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도 해묵은 양국 갈등이 미국의 안보이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간접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 연내 ‘한일정상회담’ 성사될까...한일 외교장관 오늘 회담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


한일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불과 6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 사실을 발표하면서 연내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일본이 현재의 수출 규제 기조를 유지한 상황이지만 한일 양국이 한발짝씩 물러나는 모습을 취함에 따라 양국 정부는 최종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 협상’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연내에 직접 만나 담판을 지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당장 내달 하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별도의 회담을 가질 공산이 크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2개월 만에 일본과 외교장관회의를 갖는 만큼 이 자리에서 한일정상회담이 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G20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장관은 23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할 예정이다.

강 장관은 이번 방일은 우리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협정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함에 따라 결정됐다.

강 장관은 G20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일본 및 미국 측과 접촉하고 전날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거쳐 나온 지소미아 관련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번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선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 결정을 계기로 연기의 조건인 일본의 수출규제 해소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일 갈등현안을 풀기 위한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협의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한일외교장관회담이 열린 것은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제74차 유엔총회 참석 계기로 열린 이후 근 2개월 만이다.

그러나 아직 한일 양국이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한 만큼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우선 한일 갈등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강제징용 문제의 경우 이번 한일 외교라인 협의 과정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더불어 수출규제 사태 역시 ‘대화의 여지’를 열었을 뿐, 실제로 수출규제가 철회되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이 다시 오르도록 하는 데까지는 많은 과정이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논의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다시 꺼내 들 여지도 있다.


◇ 한일 관계 돌파구 열렸지만...美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깜깜’


이렇듯 우리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풀기 위해 어렵사리 돌파구를 찾은 가운데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서는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미국 국방부는 한국을 ‘부자나라’라고 재차 언급하면서 한국이 부담할 내년도 분담금으로 올해 분담금(1조389억 원)의 5배가 넘는 50억 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을 요구했다.

지난 19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제3차 회의는 앞으로 이어질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한미 정부가 이날 열린 회의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회의는 파행됐다. 이어 양측은 이례적으로 장외 신경전까지 벌이면서 입장차를 드러냈다. 제임스 드하트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유감스럽게도 한국팀이 내놓은 제안은 공정하고 공평한 부담분담이라는 우리측 요청에 부응하지 않았다"며 한국 측에 협상 재개를 위해서는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새로운 안을 내놓을 것을 압박했다.

미국의 압박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21일(현지시간) 베트남을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자리에서 "나는 그들의 방위 및 미군 주둔의 방위비 분담을 위해 보다 더 기여할 돈을 갖고 있는 나라들에 더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불합리(unreasonable)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 NYT "트럼프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한미 동맹 훼손"

그러나 주요 외신들은 미국 측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이 ‘터무니없는 요구’라고 비판하며 한국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루즈-루즈(lose-lose) 제안’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루즈-루즈’는 모두가 승리자가 된다는 ‘윈-윈’(win-win)에 상대되는, 모두가 패배자가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2만8000여명의 주한미군 유지 비용에 대해 불평을 해왔으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보다 5배 이상 인상해야 한다는 ‘기이한’(outlandish) 요구에 지난 19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급작스러운 결렬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NYT는 "동맹이 헐값에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확신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그의 현재 한국과의 승강이가 보여주듯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NYT는 "가장 치명적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합리적인 보상 요구가 동맹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한국은 대통령의 강온 성향을 불문하고 "한미동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한국내) 격노를 촉발했다"고 전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도 22일 사평(社評)에서 "미국의 이런 식의 (협상) 방식은 한국을 갈취하는 것과 같다"면서 "이는 매우 인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구시보는 "지난 19일 미국과 한국 간 방위비 협상이 무산된 것은 미국이 한국에 4배가 넘는 방위비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행태는 한국 전 사회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강조했다.

이어 환구시보는 "한국은 그동안 계속해서 방위비를 인상해 왔다"면서 "미국이 4배 이상의 방위비 인상을 요구한 것은 해외 주둔군 제도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환구시보는 또 "미국은 한국이 다른 옵션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방위비 4배 인상이라는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면서 "이는 완전히 상대의 체면과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미국의 주둔군 운영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미국은 예전처럼 비교적 낭비적인 방식으로 더는 세계 패권을 유지해 나가기 어렵게 됐다"며 "이는 해외 주둔군 운영 방식이 변한 가장 큰 이유"라고 덧붙였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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