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기업·기업인 형사처벌 규정 전면 재검토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1.25 09:02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


얼마전 편의점을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하소연을 들었다. 몇 개월 전 학생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지원했다. 학생의 집이 편의점과 멀어 마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일자리가 꼴 필요하다는 하소연에 아르바이트로 채용했다. 처음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지인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혼자 자취하면서 고생한다는 측은한 마음에 시급도 높여 주고, 음식을 따로 챙겨주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지인은 당연히 출근하지 않은 동안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고용계약은 만료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노동청으로부터 출두 명령을 받았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임금체불로 고발한 것이다. 임금체불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이다. 지인은 일하지 않은 아르바이트에게 임금을 주지 않은 것이 왜 죄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의 불성실함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고 해고 통지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일반 회사처럼 출근과 퇴근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니 꼼짝없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업가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지인의 사례처럼 사업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형사처벌의 위험이 따른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경제법령상 처벌현황을 보면 경영자 또는 기업에 대한 처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2019년 10월 말 기준, 285개 경제법령상 형사처벌 항목이 2657개에 이른다. 공정거래법, 상법 등 비교적 규모가 큰 기업에 적용되는 법령도 있지만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이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모든 사업자에게 적용되는 법령도 상당수이다.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분석한 결과 여러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다. 우선 인신구속형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2657개 처벌항목 중 징역 또는 벌금이 2288개로 전체의 86%에 달하고 여기에 징역만 있는 항목 86개(3%)를 더하면 전체의 89%가 인신구속형에 해당한다. 벌금만을 부과할 수 있는 항목이 236개로 전체의 9%에 불과하다.

또한 경제법령상 처벌항목의 83%(2657개 중 2205개)가 범죄행위자와 사용주, 법인을 동시에 처벌 할 수 있다. 대표 이사가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거나 통제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종업원만의 잘못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실무자와 담당 임원까지만 처벌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표이사가 기소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실례로 A사는 공시담당 직원의 실수로 일부 정보를 누락해 공정위에 공시자료를 제출했다가 대표이사와 실무자가 동시에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 당한 사례가 있다.

형사처벌이 가능한 항목의 양적, 질적 증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9년에는 형사처벌 항목수는 1868개로 법률당 6.55개 였다. 2019년 10월 기준 형사처벌 항목은 총 2657개로 법률 당 평균 9.32개로 20년 동안 양적으로는 42% 증가했다. 세부적으로는 징역 또는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 경제범죄 항목의 증가율이 52%(1507개→2288개)로 가파르게 상승한 반면 벌금만을 부과하는 범죄유형은 7%(254개→236개) 감소했다. ‘징역 또는 벌금’의 처벌 강도 역시 강화되었다. 징역 또는 벌금형의 경우 20년전 평균 징역 2.77년에서 3년으로, 벌금은 3524만원에서 5230만원으로 각각 8.3%, 48.4%씩 증가하였다.

기업(인)에 대한 처벌이 늘어나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 어렵다. 과감한 사업진출 보다는 법적인 리스크를 먼저 고려하게 되고 보수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투자하기를 거릴 수밖에 없고 덩달아 일자리도 줄어든다.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 제로베이스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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