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에 대우실업 창업…30년만에 재계 2위로 성장
IMF 위기때 해체…도피 베트남서 청년사업가 양성
1년 투병생활 끝 아주대병원서 영면…경제계 애도
▲숙환으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연합)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어록을 남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83)이 9일 오후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고 10일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했으며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 이후 주로 베트남에서 지내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 건강 악화로 귀국했으며 자신이 사재를 출연해 세운 아주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지난 1년여 동안 입원을 거듭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 만이다.
1936년 대구 출생인 김 전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추앙받다 외환위기 직후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내몰리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한국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당시 명문 학교인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왔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다 만 30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199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다. 해체 직전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액(1323억 달러)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발표했지만, 결국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2000년 4월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21조원대 분식회계와 9조9800억원대 사기대출 사건으로 2006년 대법원에서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확정받았다.
▲1999년 4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과 함께 대우 디자인포럼에서 자동차 모형 제작과정을 살펴보고 있는 김우중 전 회장의 모습. (사진=연합)
◇ ‘대우’ 계열사 명맥 유지
이후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대우’라는 정체성은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명맥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사명에 ‘대우’가 들어간 회사는 대우건설, 위니아대우(옛 대우전자), 대우조선해양(옛 대우중공업 조선해양부문),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 등이 있다. 이중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어 인수 후 ‘대우’라는 이름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대우그룹 해체 20년을 맞은 올해 4월에는 대우실업이 모태인 포스코대우가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변경했다. 포스코그룹이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며 수년간 ‘대우’라는 이름을 썼으나 포스코그룹사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웠다. 대우자동차는 2002년 미국 GM이 인수한 뒤 ‘GM대우’로 새 출발했다. 그러나 GM이 대우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 인상 등을 고려해 2011년 대우를 빼고 ‘한국GM’으로 사명을 바꿨다.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두산그룹으로 들어가면서 두산인프라코어로 다시 태어났다. 대우전자는 2006년 파산 후 워크아웃과 매각을 거쳐 대우일렉트로닉스, 동부대우전자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대우’는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대유위니아그룹이 대우전자를 인수하면서 현 사명인 ‘위니아대우’를 쓰고 있다.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대우그룹 공채였던 ‘대우맨’들은 해마다 창립기념일인 3월22일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10일 부고를 전하면서 김 전 회장이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글로벌 청소년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달라"는 유지를 남겼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그룹 해체 이후 과거 자신이 시장을 개척한 베트남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머물며 동남아에서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 프로그램에 주력해왔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들은 베트남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사업 연수생들이 베트남 하노이 보건대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
◇ 경제계 깊은 애도
경제계는 김 전 회장의 별세를 애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영 효시이자 한국 경제발전 성공의 주역인 김우중 회장이 별세하신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김 전 회장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였다. 냉전이 끝나자 가장 먼저 동유럽으로 달려가 세계경영의 씨앗을 뿌렸고, 중남미, 중국, 베트남, 아프리카 등 당시 왕래도 드문 낯선 땅에 가장 먼저 진출해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알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전 회장의 열정적인 경영철학은 여전히 우리 경제계에 큰 발자취로 남아있다"면서 "금융, 건설,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우리 주력산업에서 굴지의 기업을 이룩했고, 그 기업들은 현재도 우리 경제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자녀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예정됐으며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에너지경제신문 김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