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교 칼럼] 원자력 정책 방향 검토를 위한 제언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2.11 15:50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김선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2009년 12월, 대한민국 전력산업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성과가 있었다. 바로 ‘UAE 원전 수주의 성공’이다. 한전 컨소시엄은 약 200억 달러의 원자력 발전 건설 수주에 성공했다. 운영까지 포함하면 400억 달러 규모다. 과거 1989년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 규모 63억 달러의 약 6배가 넘는 한국 플랜트 수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수출 성공에 고무된 정부는 이듬해 ‘원자력 발전 수출산업화 전략’을 발표한다. 2012년 10기, 2030년까지 80기(전 세계 시장의 20%)를 수출해 4000억 달러(477조 5000억 원)를 목표 삼아 정부가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노력하겠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원전 산업계의 기대와 예측은 현실과 크게 달랐다. UAE 이후, 단 1 건의 원자력 수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국내 원자력 산업 역량의 문제보다는 세계 원자력 시장이 당초 예상과 다르게 수축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책 수립은 2030년까지 430기의 원전이 증가한다는 세계원자력협회의 전망을 근거로 했으나 실제 시장은 1/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 세계 원자력 발전기 규모는 2010년 375.41GW, 442기에서 2018년 396.41GW, 450기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좀 더 살펴보면, 원자력 발전은 우리가 UAE에 원전 수출을 수주했을 때에도 기로에 서있었다. 1976년 역사상 가장 많은 44기의 원전이 설치된 후, 그 수치는 큰 폭으로 축소되는 추세를 보였다. 미국의 쓰리마일,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가 원전의 수용성을 낮춘 결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신규 원전 건설은 매년 5기를 넘기가 어려웠다. 중국이 원전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선 2000년대 중반 이후, 10기를 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중국조차도 원전 확장에 신중을 가하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전 원전이 전기를 생산하는 비중은 14%였으나 2019년 현재 10% 수준으로 감소했다. IAEA(국제 원자력 기구)에 따르면, 2050년 그 비중이 5%로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원전 모태 국가로 볼 수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3~5%로 낮아져 시장 퇴출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IEA(국제 에너지 기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2025년까지 선진국의 원자력 용량의 25%가 사라지고, 2040년이 되면 2/3 가량이 소멸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일본의 영국, 터키 원전 수출의 실패는 원전 시장에서 수익을 확보하고 준공하는 일 자체가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또한 중국, 러시아 등이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남아공, 이집트, 사우디 등 원전 건설을 계획하는 국가에 수출 기회를 노리고 있으나 이 마저도 수익창출 면에서 녹록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독일 지멘스 엔지니어 클라우드 바델이 "원전을 감당할 수 있는 국가는 추가적인 발전 용량이 필요하지 않으며, 전기가 필요한 국가는 원자로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의 예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다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원전산업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핵폐기물과 시설 관리를 포함해, "현재 가동되는 원자력이 정말 안전한가?"라는 논란은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원전은 기로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원전의 평균 연식은 30.45년으로 오래돼 문제가 발생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 확장된다면 빠르게 폐쇄될 위협에 놓여 있다. 실제 거의 모든 에너지 유관 기관의 전망에 따르면 폐쇄와 신규 확장이 균형을 맞춰 전체 용량은 유지되는 수준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빌 게이츠가 지원한다는 원전은 개선된 방식의 소형모듈원전(SMR)인데, 아직 가능성이 있을 뿐 시장에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는 10년 내외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원전 확장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원전 수출시장이 500조~1000조 시장이라는 주장에 앞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을 추가적으로 짓기란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가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은 국제 정치 구도 상 우리는 시도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거의 대다수이다. 그리고 원전 수명이 연장되는 것과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 탈원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원전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일은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과장과 허위 사실 혹은 기술적 우월성과 선민의식, 정치적 유익이 주도하는 일부의 방식은 원전의 미래와 우리나라 에너지의 미래를 위해서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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