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트럼프, '벼랑 끝 전술' 사우디...올해 국제유가 승자는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2.14 09:50

사우디, '비전 2030 추진' 국제유가 80달러 수준 절실
감산규모 확대-기간 연장 등 '공급과잉 해소' 총력전
트럼프, 셰일가스 손익분기점 감안 WTI 55~65달러 적정 복안
WTI 연초 이후 30% 급등...사우디 기대치 하회-트럼프는 '만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우리는 미국의 에너지 분야에서 혁명을 일궜다. 미국은 이제 세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 1위 국가 자리에 올랐다." (2019년 2월 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정연설 발언 중 일부) 

"OPEC이 원유공급을 늘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 시장은 취약하고 유게는 너무 높아지고 있다."(3월 28일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국제유가'를 두고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벌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희비가 엇갈렸다. 올해 국제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 이행에도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수요가 위축되면서 65달러 수준을 맴돌고 있다. 

반면 그동안 '저유가'를 강조하며 산유국들을 대상으로 "공급을 늘리라"고 압박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더이상 '유가'를 거론하지 않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감산규모를 기존 하루 120만 배럴에서 170만 배럴로 확대하며 '국제유가 반격'을 모색하고 있지만, 공급 과잉 현상이 계속되면서 실제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WTI 3개월 만에 최고치

1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1.5%(0.89달러) 뛴 60.0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내년 2월물 브렌트유는 1.59%(1.02달러) 오른 65.22달러에 마감했다.

이날 국제유가는 미중이 사실상 1단계 무역협상에 합의했다는 소식에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영국 보수당이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내년 1월 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도 유가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원유시장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갈등이 올해부터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1월 2일 배럴당 54.91달러에서 4월 24일 74.57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양국이 협상에서 별다른 타협점을 찾지 못한데다 서로에게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내들면서 브렌트유는 8월 7일 56.23달러까지 하락했다. 브렌트유는 올해 9월 사우디 원유시설 피습사건으로 인해 69.02달러로 70달러 선을 넘보기도 했지만 금방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올해 들어 브렌트유는 18% 올랐고, WTI는 30% 급등했다.


◇ '추가감산 카드'에도 사우디 기대치 하회

이렇듯 국제유가가 연초 이후 반등하긴 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웃을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비전 2030'으로 명명된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국가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유가를 최소 8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전 2030은 사우디가 2030년까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보건·의료, 신재생에너지, 인적자원 개발, 국방 등 비석유분야의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석유 수출의 수익성을 높여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내년 3월까지 하루 120만 배럴 규모의 감산 조치를 이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 일부 회원국들이 감산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유가 반등 폭은 당초 사우디 기대치보다 크지 않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이라크, 나이지리아, 러시아의 평균 감산이행률은 각각 -28%, 12%에 그쳤고 러시아 역시 이행률 73%로 당초 할당량을 하회했다.

결국 OPEC+ 산유국들은 이달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를 열고 감산 규모를 현행 하루 12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을 추가로 감산하고, 이를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하루당 170만 배럴이 글로벌 원유 공급망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OPEC+는 내년 3월에 다시 만나 감산 정책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다. 사우디 에너지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는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OPEC+의 총 감산 규모는 하루 21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며 "OPEC+가 합의를 준수해야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왕관의 보석' 아람코 연일 강세...사우디 체면 지켰다

사우디가 어떻게든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건 이른바 '왕관의 보석'으로 불리는 아람코의 기업공개(IPO)와 밀접하게 연관됐다. 이달 상장한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불리기 위해서는 OPEC+가 원유 공급량을 줄여 유가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읻. 이렇게 되면 사우디는 IPO로 더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다. 사우디 왕실은 아람코 IPO 규모를 2조 달러(2380조원) 수준으로 기대했다. 

상장 전까지만 해도 아람코의 기업가치가 사우디 왕실의 기대치(2조 달러, 2380조원 수준)를 하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상장 이후 아람코는 연일 강세를 보이면서 사우디의 체면을 지켰다. 아람코는 거래 이틀째인 12일(현지시간) 상한가로 마감한 전날 종가보다 4.55% 오른 36.8리얄(1만1532원)에 거래를 마쳤다. 12일 종가를 기준으로 아람코의 시가 총액은 1조9천600억 달러(2304조원)를 기록해 사우디 정부가 공모전 기대했던 2조 달러에 근접했다.
    
이날 아람코의 주가는 개장 직후 상한가인 38.7리얄(1만2천243원)까지 올라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날 등락을 반복하면서 결국 2조 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장이 마감됐지만 아람코의 시가 총액은 아람코의 상장 이전까지 가장 비싼 기업이었던 미국의 애플(1조2000억 달러)보다 월등히 높고 한국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318조원)의 7.7배에 달한다.


◇ '석유 공급과잉' 지속...조급한 사우디 VS 트럼프는 여유만만

이렇듯 사우디가 국제유가와 감산 규모 등으로 인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사이 '저유가'를 줄곧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를 위해 국제유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트위터에서 "OPEC이 원유공급을 늘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 시장은 취약하고 유가는 너무 높아지고 있다"며 산유국들의 감산조치로 유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2월 트위터에서 "유가가 너무 오르고 있다. OPEC은 제발 진정하라"면서 "세계는 유가 급등을 받아들일 수 없다. 취약하다"고 밝히는 등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바닥' 수준의 국제유가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셰일오일의 손익 분기점은 WTI 기준 배럴당 40~50달러 수준이다. 국제유가가 40~5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세력인 블루칼라 백인들과 불편한 관계를 초래할 수 있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계를 보면 미국이 원하는 국제유가 수준은 WTI 기준 55~65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즉 국제유가가 현재와 같은 흐름을 이어간다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굳이 산유국을 향해 "공급량을 늘려라"라고 압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제 사우디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원유 공급 과잉이 계속되면서 글로벌 석유·가스 기업들은 잇따라 자산 가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전기 자동차 및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등도 국제유가에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사우디의 눈물겨운 감산 정책에도 앞으로 국제유가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은 점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미국의 석유 대기업 셰브런은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의 셰일가스전, 멕시코 걸프만의 해저 유전 사업, 캐나다 키티맷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의 자산 가치를 총 100억∼110억 달러(약 11조9천억∼13조1천억원)가량 낮춘다고 밝혔다.
    
마이크 위스 셰브런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고 최고 수익을 내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힘든 선택을 해야만 한다"며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을 이끈 수평 시추와 수압 파쇄(hydraulic fracturing) 공법 등의 기술은 글로벌 시장을 공급 부족에서 과잉으로 뒤바꿔놨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초 스페인의 석유·가스 기업인 렙솔은 자산 가치를 50억 달러 하향 조정했으며 영국의 국영석유회사인 BP PLC도 올해 10월 자산 가치를 26억 달러 낮췄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도 수년간 미국 내 보유한 천연가스 자산 가치를 25억 달러가량 하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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