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펭수가 보여준 ‘합방’의 가능성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2.16 13:11
[EE칼럼] 펭수가 보여준 ‘합방’의 가능성

조재형

▲조재형 : <유튜브 크리에이터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 됐다. 올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이콘은 무엇이었을까? 전통의 캐릭터 명가 EBS가 배출한 크리에이터 연습생 ‘펭수’가 강력한 1위 후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인 펭수의 인기는 가히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하다.

자이언트 펭TV는 펭수의 인기에 힘입어 첫 영상 업로드 이후 약 7개월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 펭수 신드롬은 유튜브에 머무르지 않는다. EBS의 자식 펭수는 KBS, MBC, SBS, JTBC 같이 지상파, 종편을 넘나들며 각 방송사 간판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도전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마저 존재감을 발산했다. 인기에 힘입어 펭수는 인크루트가 성인남녀 2천3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9 올해의 인물’ 방송·연예 분야 1위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MBC의 새 예능 ‘놀면 뭐하니’가 창조한 ‘유산슬’은 또 어떤가. 국민 MC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도전기는 국민 예능 ‘무한도전’의 종영 이후 자칫 정체기에 빠져들 뻔했던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이 만든 캐릭터가 KBS 장수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 출연한 사실은 한번 곱씹어볼 만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타 방송사 출연자가 방송국을 넘나드는 일은 금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시간을 조금 과거로 돌려보자. 몇 년 전 방송가를 뒤흔들 뻔했던 컬래버레이션 시도가 있었다. KBS의 간판 예능 ‘1박 2일’의 수장이었던 나영석 PD가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에게 ‘합방’을 제안한 것. 당시 한국 예능 1인자를 다투던 프로그램들이라 지난 2015년 나PD의 인터뷰로 밝혀진 두 사람의 접촉은 그 사실만으로 상상의 나래를 자극시켰고, 대중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나영석 PD의 제안은 실패로 돌아갔다. 양쪽 방송국 모두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유연해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한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 출연자가 다른 방송에 출연하는 장면은 쉽게 보기 어렵다. ‘무한도전’이 사라진 지금, 이제는 시도조차 할 수 없기에 두 스타 PD의 짧은 통화는 전설로 남았는지 모른다.

펭수와 유산슬이 철옹성 같던 방송가의 경계를 허문 이유를 두고 여러 전문가들이 둘의 캐릭터성을 꼽는다. 펭수는 EBS 소속보다는 유튜브 스타로, 유산슬도 유재석과 별개의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것. 여기에 개인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합방(합동 방송)’ 문화의 확산을 또 다른 이유로 보태고 싶다.

합방은 신규 시청자를 확보하기에 매우 적합한 포맷이다. 유튜브를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새싹 크리에이터들도 유명 크리에이터와 합방 이후 ‘인기 동영상’에 오르거나 구독자가 증가한 사례가 적잖다. OTT서비스 확산과 개인 방송 열풍 속에서 지상파 방송은 독점적 지위를 빠르게 잃고 있다. ‘거대한 프로덕션’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방송국은 빠르게 이탈하는 시청자를 어떻게 하면 붙잡을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기술의 변화로 위기는 이미 도래했고, 위기를 타개할 힌트는 어쩌면 유튜브나 개인 방송에 있을지 모른다.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트렌드에 방송 구성원 모두가 대응할 필요는 없다. 개인 방송이 가지지 못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퀄리티 방송 제작은 방송국만이 지닌 강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트렌드를 반영한 기획과 편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제는 지상파 방송도 전략적인 합방, 특집을 추진해보면 어떨까? 새로운 재미를 위해서라도 실험해볼 때다. 그 가능성을 펭수와 유산슬이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조재형 : <유튜브 크리에이터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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