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군사적 갈등도 모잘라 핵위기까지…중동정세 혼돈의 소용돌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1.06 14:23

이란 최고지도자 "美 먼저 전쟁 시작...군사시설 타격 목표"

군사적 외 동맹세력 동원 호르무즈 봉쇄, 드론 공격 등 거론

트럼프 "보복시 응징 각오해야"...강력한 경고 발언

유럽, 이란에 핵합의 이행 압박..."중동정세 기름 부은 격"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우)(사진=AP/연합)


한동안 주춤했던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이달 3일(현지시간) 미국의 이라크 바그다드 공습에 이란의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이 사망하자 이란이 군사적 대응을 거론하며 ‘가혹한 보복’에 나서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이란 정부는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정한 핵프로그램에 대한 규정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사실상 ‘핵합의 탈퇴’라는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중동지역을 둘러싼 정세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중동의 혼돈이 시작된 가장 직접적인 출발점은 2018년 5월이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핵 합의를 파기한 것이 현재와 같은 혼돈으로 이어졌다.

이란에 적대적인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핵무기를 여전히 몰래 제조한다는 근본적인 불신을 버리지 못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핵합의 준수를 사찰을 통해 검증했는데도 미국은 위반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핵합의를 탈퇴했다.

이후 미국은 2018년 8월과 11월 핵합의로 완화한 대이란 경제·금융제재를 완전히 복원하면서 이란에 핵협상을 새로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특히 미국은 작년 5월 8개국에게 부여된 ‘이란산 원유수입 한시적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으면서 이란의 핵심 자금줄인 원유수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경제제재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의 이러한 압박에 굴하지 않고 핵합의를 대신할 새로운 핵 협상에 나설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지난해 5월부터 핵프로그램 제한과 관련된 의무를 일부 유예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란의 위협을 명분으로 항공모함 편대를 걸프 해역에 조기 배치하는 등 군사적 압박을 이어갔지만 유조선 피격(5, 6월), 미군 무인기 피격(6월), 이란 유조선 억류(7월), 영국 유조선 이란에 억류(7월),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9월) 등의 악재가 발생했다.

그 이후로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달 27일 이라크 키르쿠크 미군 주둔 기지에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인 1명이 숨졌고, 이로 인해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급속도로 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라크 내 미국인 피해를 한계선으로 그었던 미국은 로켓포 공격을 이란 혁명수비대가 직접 지원하는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이틀 뒤 이 무장조직의 군사시설 5곳으로 전투기로 폭격해 25명이 사망했다.

이에 반발한 시아파 민병대와 추종세력이 지난달 31일과 1일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을 급습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미국은 이달 3일 솔레이마니 소장을 바그다드 공항에서 폭격해 살해했다.


◇ ‘가혹한 보복’ 천명한 이란…"모든 국민이 복수할 것"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관이 지난 5일 이란에 도착하자 이란인들이 미국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AP/연합)


이렇듯 미국이 솔레이마니 소장을 제거하자 이란은 ‘가혹한 보복’을 예고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그(솔레이마니)의 순교는 그가 끊임없이 평생 헌신한 데 대한 신의 보상"이라며 "그가 흘린 순교의 피를 손에 묻힌 범죄자들에게 가혹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에는 이란 중북부의 종교 도시 곰의 잠카런 모스크(이슬람 사원) 돔 정상에서 붉은 깃발이 게양되기도 했다. 잠카런 모스크의 붉은 깃발은 ‘순교의 피’가 흐를 격렬한 전투가 임박했다는 상징물이며 이는 이슬람과 이란이 적에 보내는 경고로 해석된다.

붉은 깃발을 게양하러 온 종교 재단 관계자는 미국의 폭격에 사망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영정을 앞세우고 모스크 옥상까지 올라갔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한 미국에 대한 보복의 뜻으로 이 깃발을 게양했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유족을 조문한 자리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딸로부터 "누가 우리 아버지의 복수를 하느냐"라는 물음을 받자 "우리 모두다. 이란 모든 국민이 선친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답변, 대미 보복 의지를 재확인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은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모른다"라며 "그들은 이번 범죄에 대해 엄청난 후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호세인 데흐건 이란 최고지도자 군사 수석보좌관도 미국을 상대로 한 군사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데흐건 보좌관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대응은 틀림없이 군사적일 것이며, (미국의) 군사시설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란) 지도부는 전쟁을 추구한 적이 없으며,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해왔다"면서 "전쟁을 시작한 것은 미국이고, 그들의 행동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데흐건 보좌관은 이어 "이 전쟁의 시기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그들이 가한 타격에 준하는 타격을 받는 것"이라면서 "그 이후에는 그들(미국)이 새로운 사이클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 이외에도 이란이 자국 동맹세력을 동원해 중동 지역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하는 방안에서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보복 카드들이 거론되고 있다.


◇ 美 이란 보복 위협에 "신속·완전하고 불균형적 반격" 경고

▲중동지역으로 증원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 브래그 기지의 미군들(사진=AP/연합)


미국도 이에 맞서 ‘사상 최고의 반격’을 예고하자 미국과 이란의 긴장감이 전쟁 직전으로 치닫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이란이 미국인이나 미국 목표물을 공격할 경우 신속하고 완전하면서도 불균형적인 방식으로 반격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이 미디어 게시물들(Media Posts)은 이란이 어떠한 미국 사람 또는 목표물을 공격할 경우 미국은 신속하고 완전하게, 그리고 아마도 불균형적인 방식(disproportionate manner)으로 반격할 것이라는 것을 미 의회에 통지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한 법적 고지는 요구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공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언은 이란의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국의 공습으로 폭사한 이후 이란이 ‘가혹한 보복’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례적 대응이 아닌 ‘불균형’적인 대응 방침을 밝혀 이란이 보복을 감행할 경우 훨씬 더 막대한 응징을 실행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말에는 이란의 미군 무인기 격추에 대한 보복 공격과 관련, 균형적인 대응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단시킨 바 있다. 그는 작년 6월 21일 트위터에서 "우리는 어젯밤 세 곳에 보복하려고 했고 얼마나 많이 죽느냐고 물으니 ‘150명입니다’라는 게 장군의 대답이었다"면서 "무인기 격추에 대해 비례하지(proportionate) 않아서 공격 10분 전에 내가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군사 대응에 나서지 않는 근거로 비례의 원칙을 제시한 반면 이번에는 ‘불균형적’ 대응을 강조하면서 이란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트윗을 통해 "이란은 오랜 기간 오직 골칫거리였을 뿐이었다"라며 이란이 미국인이나 미국의 자산을 공격할 경우를 대비해 미국은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놨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52곳의 공격 목표지 중 일부는 이란과 이란 문화에 매우 높은 수준의 중요한 곳들이며 해당 목표지는 매우 신속하고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미국은 더 이상 위협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 5일(현지시간) ‘가혹한 보복’을 공언한 이란에 대해선 "나쁜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며 위협을 초래하는 "실제 의사 결정권자들에 대해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CNN, 폭스, ABC, CBS, NBC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솔레이마니를 사살한 미국의 공격에 대한 합법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이란이 미군을 보복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인정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이란이 실수를 해서 우리 군대, 이라크에 있는 군대나 시리아 북동부에 있는 군인들을 뒤쫓기로 결정할 가능성이 진짜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중동 병력 증파에 본격 나서면서 이란의 보복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군 수백명이 지난 4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포트 브래그 기지에서 쿠웨이트를 향해 떠났다. 이들은 지난주 초반 바그다드 미국 대사관이 이라크의 친이란 시위대에 공격받은 데 따라 중동으로 긴급히 출발한 병력 700명과 합류할 예정이다.

미군 82공수부대의 대변인인 마이크 번스 중령은 이와 관련, "82공수부대 내 신속대응병력 3500명이 수일 내로 중동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 엎친데 덮친 격…이란, 핵합의 탈퇴까지


이렇듯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이런 상황에 이란이 핵합의 탈퇴라는 카드를 꺼내들면서 이란 핵위기까지 재점화되고 있다.

이란은 지난해 5월부터 60일 간격으로 단계적으로 핵합의 이행 수준을 감축하면서 유럽에 핵합의 이행을 압박했는데 공교롭게도 5일이 5단계 감축 조처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예고된 일정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불안해진 중동정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이란 정부는 지난 5일 핵합의에서 정한 핵프로그램 제한 조항을 더는 지키지 않겠다면서 우라늄을 원하는 만큼, 필요한 농도까지 농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란 정부는 "원심분리기 수량 제한은 이란이 현재 지키는 핵합의의 마지막 핵심 부분이었다"라며 "이를 버리겠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최고지도자의 종교적 칙령(파트와)으로 금지한 핵무기를 보유할 계획이 없다고 누누이 밝혔지만 우라늄 농축 능력이 핵무기 제조의 핵심인 만큼 이란이 핵무기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서방의 의혹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핵합의가 결국 좌초하면 서방과 이란의 핵협상이 타결된 2015년 7월 이전 핵위기가 상존하는 상황으로 완전히 회귀할 전망이다.

핵합의를 타결했을 때 서방은 이란이 이를 어기고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걸리는 시간을 최장 1년 반으로 추정했다.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가속한다면 앞으로 1년 남짓한 기간에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놓고 이스라엘을 포함한 서방과 이란의 충돌이 본격화할 수도 있다.

이란은 이미 사거리 2000㎞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터라 이란이 핵탄두를 보유한다면 중동 전체는 물론 서유럽까지 사정권이 된다. 국제사회는 미국과 이란의 정면 충돌에 대화를 통한 정치적 해법을 촉구하지만 양국의 겉잡을 수 없는 적대의 악순환으로 그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철회한다면 핵합의로 복귀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핵합의는 더는 유효하지 않을 전망이다.

유럽 정상들은 이란의 핵합의 탈퇴에 대해 우려를 포명하며 이란에 탈퇴 선언 철회를 촉구했다. 5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핵합의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치를 철회할 것을 이란에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3국 정상들은 "현시점에선 (긴장의) 단계적 완화가 중요하다. 모든 관련국이 최대한도의 억제와 책임감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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