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산업계에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데이터 활용 관련 규제가 풀리면서 데이터산업의 성장 토대가 마련됐다고 환영한다.특히 통신·금융·유통 등 서로 다른 분야의 데이터를 결합할 수 있게 돼 다양한 산업군에서 여러 가지 비즈니스와 시너지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정보기술(IT) 업체들을 중심으로는 헬스케어 분야와 핀테크 분야 등의 신사업 진출도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데이터 3법’ 개정안이 처리되고 있다. |
◇ 개인정보 활용 촉진 통해 각종 비즈니스 창출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 3법’은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이 중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 정보’를 본인의 동의 없이 통계 작성, 연구 등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상업적 통계 작성, 연구, 공익적 기록 보존 등을 위해 가명 정보를 신용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개인정보 관련 내용을 모두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관하는 내용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가명정보’라는 개념이다. 가명정보란 개인정보 일부를 삭제하거나 대체해 추가정보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명처리’한 정보를 뜻한다. 가령 ‘서울 중구 새문안로 26에 사는 45세 남성 홍길동’이라고 하면 개인정보지만 ‘서울 중구 거주 40대 홍OO’이라고 하면 가명정보가 된다. 지금까지는 개인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도 개인정보로 간주해 본인 동의 없이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법을 개정하면서 가명정보는 홍길동의 동의가 없어도 제삼자에게 제공해 통계작성이나 산업적 목적을 포함하는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법안에서는 ‘익명정보’의 개념도 명확히 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름, 생년월일 등 사람을 구분하는 핵심 식별 정보를 철저히 제거하면 상업적으로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 “만세” 외친 박용만 회장…홍남기 부총리도 ‘환영’
데이터 3법 개정안의 통과를 간절히 염원해왔던 경제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간 국회를 수차례 오가며 법안 처리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 중인 ‘CES 2020’ 현장에서 법안 통과 소식을 접한 뒤 “만세”를 외치며 환영했다.
박 회장은 본회의 통과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만세! 드디어 데이터 3법 통과! 애써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라며 “법안 발의해주신 의원님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마지막까지 애써주신 여상규 위원장님, 같이 설득하고 애써주신 은성수 위원장님, 늦은 시간까지 밥도 거르고 애쓴 실무팀들 모두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10일 대한상의는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데이터 3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와 같은 것으로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신산업 분야의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는 일은 물론, 기업들이 고객 수요와 시장 흐름을 조기에 파악·대응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우리가 미·중 등 경쟁국보다 늦게 출발하는 만큼 정부는 데이터 활용과 보호에 대한 시행령 개정 등 후속작업에 속도를 더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자원인 데이터를 가치 있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데이터 3법 통과로 금융, 스마트시티,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 간 데이터 융·복합을 통해 맞춤형 서비스와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구글 아마존 등 톱클래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축적해놓은 빅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산업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라며 “양질의 데이터 없이는 우수한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5세대 이동통신,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 관련 산업 성장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데이터3법의 통과는 ICT 업계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황창규 KT 회장은 지난해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해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비식별 개인정보를 활용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SK텔레콤 역시 통계청, 서울교통공사, 기업은행 등과 협약을 맺고, 다양한 통신 데이터 및 정보통신기술 등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ICT업계 관계자는 “이번 법안 통과로 데이터 간 융합이 더 활발히 일어나게 될 것”이라면서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가 하루빨리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 기업 마케팅 더 고도화 된다…헬스케어‧핀테크 분야 ‘주목’
법안의 통과로 가장 주목을 받는 분야는 건강과 금융 등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다루면서 각종 규제를 적용받았던 ‘헬스케어’와 ‘핀테크’ 분야다. 데이터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지면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유니콘 기업의 탄생까지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바이오협회 등은 “‘데이터3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향후 시행령 개정과 가이드라인 마련 등 후속조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규제 혁신이라는 당초의 법 개정 취지가 충실히 반영되고, 엄격한 개인정보 보안 대책도 병행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면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고, 국내 바이오산업의 혁신을 촉진해 그동안 선진국과 벌어진 격차를 뛰어넘어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도 “국회 본회의에서 ‘데이터 3법’ 통과로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만듦과 동시에 대한민국 핀테크 경쟁력이 한층 강화됐다”며 “이로써 미래첨단기술로 각광받는 핀테크 뿐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성장 동력을 추진하기 위한 법제도적 근간을 확립한 것”이라며 법 통과를 환영했다.
해당 분야에 신사업을 추진하던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사업도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말 대웅제약, 분당서울대병원 등과 헬스케어 합작법인인 다나아데이터를 설립했다. 카카오도 서울아산병원과 인공지능(AI) 기반의 의료 빅데이터 업체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를 세운 바 있다.
금융관리 앱 ‘뱅크샐러드’의 서비스사인 핀테크 업계 스타트업 레이니스트는 카카오(카카오페이), NHN(페이코), 토스 등과 함께 이번 법안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뱅크샐러드는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카드추천서비스’로 시작해 자산관리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해왔다. 레이니스트 김태훈 대표는 “데이터 산업에 대한 기대와 중요성에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2020년을 데이터 산업 발전의 원년으로 삼아 고객을 대변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로 경쟁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다양한 혜택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권과 핀테크 업계의 협업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 금융회사의 방대한 데이터와 핀테크 회사들의 경우 데이터 활용역량이 결합될 경우 혁신금융상품의 출시가 더욱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 기업, 정부 반기지만…일각선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기업과 정부는 한목소리로 이번 법안의 통과를 반기는 분위기지만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 국민 정보 인권을 포기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들은 10일 성명을 내고 "데이터3법 통과로 기업들은 이윤추구를 위해 제대로 된 통제장치 없이 개인신용정보, 질병정보 등에 전례없이 광범위하게 접근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며 "개인정보보호법 목적 조항은 이제 법조문 속 한줄 장식품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며 규탄했다.
이들은 “그동안 고객 정보를 수집하고 집적해 온 금융기업 등 일부 관련 기업에 데이터산업 부가가치가 집중될 것”이라며 “정보주체인 국민은 개인정보 권리 침해, 데이터 관련 범죄 증가, 국가와 기업의 국민 감시 및 차별 심화 등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인정보보호 관련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인 위원회를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장관급)으로 격상하고, 여러 부처에 분산된 개인정보보호 업무를 위원회로 일원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따라 법령 개선이나 정책 수립·집행,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조사·처분을 할 수 있게 된다. 위원회 구성인원도 현재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난다. 이런 내용은 공포 후 6개월 이후에 시행된다. 그때까지 관련 시행령 개정을 거쳐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게 된다.
또 정부는 가명정보에 다른 정보를 추가해 개인을 재식별할 경우 5년 이하 징역과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기업은 연 매출액의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정희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