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조 달러' 문 열리는 中 금융시장…韓, 골든타임 놓칠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1.23 10:51

中CSRC, 연내 금융시장 단계적 개방
해외IB, 사무실 확충-인재육성 주력
韓금융시장은 ‘소비자보호’에만 급급
금융시장 육성-시장보호 균형 모색 절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중국의 금융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금융사들은 각종 금융사고와 제재를 앞두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금융사들이 지난해 파문을 일으킨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로 당국의 중징계 결정만을 기다리는 사이 정작 글로벌 금융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골든타임’은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각종 금융사고를 계기로 엄격한 수준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국내 금융사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도록 당국 차원에서 규제 완화 등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근과 채찍을 함께 들어 소비자보호와 금융시장 육성 사이에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 중국 금융시장, ‘폐쇄적’ 이미지 벗고 ‘개방모델’ 심는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는 올해 1월부터 외국인 소유의 선물 및 보험회사 영업을 허용하고 4월부터는 100% 외국인 지분의 자산운용사 설립을 허용한다. 더 나아가 12월 1일부터는 독자적인 주식거래 중개업과 투자은행(IB) 업무도 허용해 자국의 금융업을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외국계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은행 면허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재검토하는 등 인허가 절차도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렇듯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은 1단계 무역합의를 근거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한편 외국자본 유입을 통해 경제성장률 둔화를 방지하고 자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JP모건과 노무라는 중국에서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증권사를 확보하기 위해 당국의 인허가 결정을 기다리고 있으며, 유능한 현지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사무공간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금융시장은 보험, 선물, 자산운용을 합해 45조 달러로 추정되는 만큼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서 수익원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계 금융사들은 중국의 이번 정책으로 2030년까지 매년 1조 달러 이상의 시장을 점유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중국 시장 내 외자 금융기업은 지분구조 및 경영범위 제한 등 요인으로 전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며 "중국의 금융업이 경제규모 대비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도 중국 금융시장이 워낙 폐쇄적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단계적으로 진입하면서 중국 시장의 금융업 발전에도 기여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 DLF사태에 각종 규제까지 겹겹이...국내 금융사는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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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반면 국내 금융사들은 중국 금융시장에 진출할 기회조차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DLF 사태 등 각종 금융사고로 인해 금융시장의 초점이 온통 ‘소비자보호’에만 맞춰졌기 때문이다. 당국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발전 흐름은 도외시한 채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연일 ‘소비자 보호’만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은행, KEB하나은행의 경우 DLF 사태 관련 금융감독원의 징계 여부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 역시 다음달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자기자본 1위인 미래에셋대우 역시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를 기다리면서 발행어음 같은 국내 신사업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각 금융사들은 해외법인과 사무소를 거점으로 개별적으로 해외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당장 헤드쿼터인 ‘한국 금융업’이 탄탄하게 받쳐주지 못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들이 동남아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신남방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중국은 동남아보다 진입장벽이 높아 당국의 정책 지원이 더욱 절실한데, 현재 금융시장이 온통 규제와 소비자 보호 등에만 집중하다보니 건설적인 논의를 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사들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 각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대한민국 금융업의 위상 제고는 물론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률 제고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융업의 위상이 높아지면 금융사들 역시 유능한 인재를 수혈하는 것이 한층 더 쉬워진다. 이렇듯 현재 대한민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을 이을 제2의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절실한 상황에서 국내 금융업을 도외시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은행, 증권, 자산운용, 보험, 카드 등 국내 금융업 어디를 봐도 앞으로 전망이 밝은 곳이 없다"며 "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이유로 무조건 금융사들을 옥죌 것이 아니라 10년 뒤 금융시장을 바라보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노력 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각 나라 상황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이 다른데, 단순히 외국계 금융사와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처한 환경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글로벌 IB와 우리나라 금융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당국을 탓하기보다는 금융사들 자체적으로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소비자 보호에 주력하면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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