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사태 장기화땐 경제침체 불가피
원유수요도 줄며 유가 내리막길
WTI·브렌트유 각각 9%·8%↓
고유가 원하는 OPEC '발등에 불'
감산규모 확대·기간 연장 검토중

석유수출국기구(사진=연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국제유가도 하염없이 무너지고 있다. 우한 폐렴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도시 봉쇄, 유동인구 최소화, 항공여행 수요 급감 등으로 원유 수요도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가가 3개월 이내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는데,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국제유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 한 주만에 9% 폭락한 WTI…"유가하락 압력 지속"


사진=네이버금융


현재 원유시장의 분위기는 불과 1개월 만에 반전됐다. 지난달의 경우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 발발 이후 약 18개월 만에 1단계 무역협상에 공식 서명할 것이라는 소식으로 국제유가가 강세를 보였다. 실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한달 동안에만 무려 10% 가까이 급등했다. 여기에 이달 초 미군이 이란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하고 이란 또한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공습하자 유가는 한층 더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이달 들어 우한 폐렴 환자들의 규모가 갈수록 빠르게 확산되고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까지 보고되자 이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이에 동반한 불확실성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원유시장 트레이더들은 또한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인 중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기록적인 하루 1012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특히 지난 주에는 미국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우한 폐렴의 전염성에 대한 경계선이 사실상 무너지자 국제유가가 본격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 WTI 가격의 경우 지난 21일(현지시간) 배럴당 58.38 달러를 기록했는데 우한 폐렴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면서 27일(현지시간)까지 배럴당 53.14달러로 약 9% 가량 폭락했다. 이는 3개월래 최고치인 지난 6일 종가인 63.27 달러대비 16% 하락한 수준이기도 하다.

같은 기간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역시 배럴당 64.59 달러에서 59.32달러로 약 8% 가량 미끄러졌고 최고치인 지난 6일의 68.91 달러보다 약 14% 낮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우한 폐렴 사태로 인해 유가 하락에 대한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몬스 에너지의 빌 허버트 애널리스트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단순 호기심의 대상에서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 및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불길한 요인으로 빠르게 변했다"고 지적했다.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의 마이클 트란 애널리스트는 "원유시장은 그동안 공급 리스크를 일으키는 요인들을 종종 겪어왔다"며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수 년만에 처음으로 수요측면에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대신증권 김소현 연구원도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이유는 우한 폐렴이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같은 피해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며 "과거 SARS 발생 당시 글로벌 교역 및 관광업의 위축에 따른 중국의 원유수요 감소 우려로 국제유가는 48일만에 33.3% 하락했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 당국은 우한시 등 주요 발병 도시들을 봉쇄하는 등 비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당국은 또한 폐렴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오는 30일까지인 춘제 연휴를 다음 달 2일까지로 연장했는데 상하이시 등 일부 지역은 다음 달 9일까지로 연휴를 늘려 인구 이동을 최소화시킬 계획이다.

중국의 이동제한, 유동인구 최소화 조치 등이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원유 수요가 계속해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의 여행 및 출장 등을 비롯한 항공 수요도 급감하면서 항공용 원유 수요도 추가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한 폐렴으로 진원지인 우한을 포함한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에서만 사망자가 100명에 달했고 베이징과 허난(河南)성 등에서도 처음으로 사망자가 집계됐다.


◇ 발등에 불 떨어진 OPEC, ‘우한 폐렴’ 대응에 나서나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사진=AP/연합)


이렇듯 국제유가가 하염없이 무너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단연 OPEC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한 OPEC 산유국들의 경제구조가 석유에 대한 높은 만큼 경제성장을 위해선 고유가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사우디가 올해 재정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산유국들은 ‘감산을 통한 유가 끌어올리기’ 전략의 일환으로 기존에 이어가던 하루 120만 배럴의 감산을 올해 1월부터 170만 배럴로 3월까지 확대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중국발 우한 폐렴 악재로 인해 국제유가가 모처럼 오를 기조가 보이지 않자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P 글로벌 플래츠는 28일 OPEC 관계자를 인용해 "OPEC 산유국들은 감산 규모를 더 늘리거나 감산기간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유가 안정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S&P 글로벌 플래츠의 클라디오 갈림버티 연구원은 28일 CNBC와의 별도의 인터뷰를 통해 "유가가 특정 한계점 이하로 하락하면 OPEC이 나설 수 있다"며 "현재 유가는 그 한계점까지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감산 규모 확대나 감산 기간 연장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OPEC이 현행 감산합의 내용을 변경할 것이란 소식은 기존에도 제기되고 있었다. 앞서 지난 24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통신은 OPEC 관계자를 인용해 산유국 감산정책이 연말까지 유지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타스통신은 "석유 카르텔은 3월 이후 각 회원국에게 부여된 원유생산 할당량을 더 늘리는 방향에 가능성이 적어지고 있다"며 "수요전망이 계속 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또 로이터통신은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3월에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감산규모를 늘리는 방향을 포함해 모든 옵션이 열려있다"고 지난 23일(현지시간)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와 동시 우한 폐렴 대응에 대해 아직 신중한 입장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압둘아지즈 장관은 "(폐렴이) 글로벌 원유수요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요인과 트레이더들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유가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며 "지난 2003년의 사스 사태 당시도 원유 소비가 심각하게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이어 "사우디는 우한 폐렴 사태가 글로벌 원유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과정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원유시장의 안정성을 지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사우디는 이러할 능력과 유연성을 겸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OPEC 산유국 3위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수하일 알 마즈루에이 에너지부 장관도 "중국 사태로 인해 원유 수요가 앞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장은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과대반응하지 않는다"고 신중론에 가세했다.

주요 산유국이 감산 규모 확대나 감산 기간 연장 등의 행동에 나서기 전에 원유시장을 진정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현재 글로벌 원유시장에는 공급망을 타이트하게 만드는 요인들에게도 주목해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산유국 리비아 내전으로 인해 산유량이 기존 하루 120만 배럴에서 7만 2000배럴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 원유재고 역시 증가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달리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S&P 글로벌 플래츠에 따르면 OPEC 산유국들의 지난 12월 원유생산량은 하루 2506만 배럴로 집계됐는데 이는 감산정책에 따른 생산 한도치인 하루 2515만 배럴을 밑돌았다.

한편, 세계 각국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우한에서 자국민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전세기를 마련해 이르면 오는 30일 우한에 체류 중인 국민 700명가량을 귀국시킬 예정이다. 일본의 경우 우한에 머무는 일본인을 귀국시키기 위해 전세기가 28일 밤 우한으로 출발해 29일 오전 중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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