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배우 송강호가 포옹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이나경 기자]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1cm의 자막 장벽을 뛰어넘어 전세계 관객들을 사로잡고 마침내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정복하기까지는 조력자들의 역할이 컸다.
무엇보다 우리말을 영어 자막으로 옮긴 미국 출신 달시 파켓이 일등공신이다. 자막변역 및 영화평론가 등으로 활동하는 파켓은 번역에서 기생충’ 특유의 맛깔스러운 대사를 뉘앙스와 상징성을 잘 살렸다는 평가다.
극 중 '짜파구리'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끓인 라면)를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으로 옮긴 게 대표적이다. 기택(송강호)이 재학 증명서를 그럴듯하게 위조한 딸 기정(박소담)의 실력에 감탄하며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은 없냐"고 농담으로 묻는 대목에선 ‘서울대’를 외국인이 이해하기 쉽게 ‘옥스퍼드’로 바꾸는 감각을 발휘했다.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서부터 봉 감독 옆에서 통역을 도맡아 해온 최성재(샤론 최) 씨도 빼놓을 수 없다. 봉 감독 의도를 정확하게 살려 통역하는 것으로 이미 유명하다. 봉 감독은 그에게 ‘언어의 아바타’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10일(한국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줄곧 그는 봉 감독과 함께했다. 신상을 밝히기를 꺼리는 그는 전문통역사가 아니라 한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기생충 음악을 맡은 정재일 음악 감독도 ‘기생충’ 주역 중 한명이다. 봉 감독은 "우아하지 않는데, 우아한 척하는 음악"을 주문했고, 정 감독은 그런 의도를 반영해 음악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아카데미상 주제가상 예비후보에 오른 엔딩곡 ‘소주 한잔’은 정 감독이 작곡한 멜로디에 봉 감독이 가사를 입힌 곡이다.
오스카 작품상 수상 직후 무대에 같이 오른 제작사인 바른손 E&A 곽신애 대표의 공도 컸다. 그는 영화잡지 키노(KINO) 기자 출신으로 영화에 대한 애정과 객관적 시각을 두루 갖춘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봉 감독이 2015년 전달한 15페이지짜리 기생충 시놉시스만을 보고도 흔쾌히 제작을 수락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곽 대표는 "복이 넝쿨째 들어왔다. 저는 그저 서포터였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췄지만 ‘기생충’ 제작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그는 지난달부터 미국에 머물며 각종 시상식에 봉 감독과 함께 참석했다.
영화의 배급을 맡은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도 숨은 주역 중 하나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손녀이자 이재현 CJ 그룹 회장의 친누나로 1995년부터 CJ 엔터테인먼트를 이끌며 300편이 넘는 한국 영화에 투자해왔다.
봉 감독과는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인연을 맺은 후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이어져왔다.이 부회장은 이번 기생충 제작도 직접 챙기며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건강악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음에도 칸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책임프로듀서로 참석했다. 그는 지난해 ‘기생충’이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올라 "이 영화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준, 참여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내 남동생 이재현(CJ 회장)에게도 감사하다"며 "저희의 꿈을 만들기 위해 항상 지원해준 분들 덕분에 불가능한 꿈을 이루게 됐다"고 감격을 표현했다. 또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한국 영화를 보러와주신 모든 분들이 보내준 의견 덕분에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라며 "여러분들이 주신 의견 덕분에 우린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분이 있었기에 한국 영화가 여기에 올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