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넛지(Nudge)가 이끄는 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2.11 09:26

박영철(한국공인회계사회 사회공헌·홍보팀장)


올해는 예년보다 눈도 덜 내리고 큰 추위도 없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삼한사온(三寒四溫)보다 삼한사미(三寒四微)가 더 걱정거리다. 겨울추위 보다 미세먼지가 더 우려스럽다. 미세먼지에 초미세먼지까지, 경보수준이 격상되면 숨쉬기가 힘들 정도다. 사람들의 외부활동이 위축되고,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차량운전도 마찬가지다. 잘 보여야 안전수칙도 지킬 수 있고, 긴급상황에도 방어운전할 수 있어서다. 잘 보여야 두루두루 편하다.

점점 불확실성이 커진다. 최근 언론기사에 종종 보이는 블랙스완(Black Swan)이니 회색코뿔소(gray rhino)니 하는 제목이 이를 반영한다. 그만큼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을 예측하기 어렵고, 파악조차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잘 보여야 경기 예측과 전망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기업도 비슷하다. 사업계획 수립과 기업 경영을 위한 의사결정도 적시에 적절하게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시장기능이 가장 중요한 실물경제에도 흡사하게 적용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경제이론. 바로‘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이다. 고전 경제학자 애덤스미스가 주창하며,"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이루는 시장기능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이라고 정의했다. 핀 제조공장 관찰로부터 시작하여 전체 경제의 구조를 파악했다. 개별 시장분석에서 시장경제 흐름을 읽은 학자의 깊은 통찰력이 엿보인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될까. 이 때 정부는 공개적으로 환율과 재정정책 등을 통해 시장에 개입한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보이는 손(Visible hands)’이라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주창하였다. 그는 "자유시장경제에서 글로벌 경제위기 등 비상상황 시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기능 못지 않게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강조되는 까닭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에서 ≪넛지≫라는 책이 떠오른다. 2009년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와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이 함께 쓴 책이다. 넛지(nudge)는‘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이다. 저자들은‘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말한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넛지≫의 저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경제 주체의 완전함‘을 전제로 하는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행동을 행동경제학이라"고 덧붙인다. 책에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는 공감이 간다. 책이 출간된지 10여년이 지났는데도 지금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다. 우선, 남자화장실 소변기에서 볼 수 있는‘파리스티커’문양이다. 암스테르담 공항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다. 스티커 부착 후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넛지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학교 앞에 설치된‘스쿨존’. 운전자들에게 과속에 대한 심리적 경고로 학교 앞 교통사고를 크게 줄였다. 또 지하철에 마련된 분홍색 좌석은 임산부들을 위한 자리다. 눈에 확 띄는 분홍색으로 구분해 놓아 양심없는 강심장들도 쉽게 자리에 앉기 어렵게 하였다. 넛지는 노골적이지 않지만 은근한 시장개입이다. 따뜻한 배려심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의 근간이다. 그럼에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허점으로 종종 한계가 드러난다. 이 때 시장에 과도한 간섭이나 강요는 오히려 반감과 반작용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보이는 손의 부드러운 개입’, 넛지가 유효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은근한 넛지식 표현과 실행수단이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세일러 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주머니를 털기도 한다. 선(善)을 위해 넛지하라." 고 강조한다. 넛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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